자연의 품에 안겨 자연을 낚았었는데…조능식
1999-05-16 한국섬유신문
▼낚시를 5·6십년동안이나 즐기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줄거움이란 것들이 한결같은 게 아니라 세월과 더불어 변하
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오늘이어서 재미있다.
인생무상(人生無常)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랄가─.
처음─낚시─하면 으례히 <고기>잡이로 생각되어 고기잡는
데 온갖 신경을 썼다. 잔챙이도 좋고 붕어아닌 잡어(雜魚)도
상관없이 낚시에 고기란 놈만 물려 나오면 신통해서 환성이
터졌다.
그러던 것이 「낚시는 과학」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서부터
<낚시바늘>과 <추>와 <낚시줄>과 <찌>등등의 조화가 고
기의 생태와 기후의 변화등과 어우러져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고기외의 사물들을 나름대로 즐기게 됐다.
낚싯대를 잡은지 10년정도 지나서부터 일 게다.
그러니까 낚시는 고기와 사람의 「인내」와 「지혜(씨름)」
인지도 모른다는 지각이다.
▼전에는 이런 저런 문화단체의 「모임」이 많았고 그것이
주말이었던 관계로 참석못하고 자연의 품속이라고 내 멋대로
이름붙인 낚시터로 떠나버렸기에 아예 “주말이면 저 친구
서울 장안에서 자취를 감춘다”고 비난 아닌 혹독(?)한 지탄
마저 감수해야만 했었다.
어떤 친구는 “낚시가 그렇게 좋으냐? 하기사 조용한 곳에서
이 생각 저 생각하는 멋도 있겠지─”라고 했다.
그러나 낙시터에 가서 낚시를 드리우면 언젠가서부터 모든
잡념을 머리속에서 털어내버리곤 했다. 소위 「무념무상(無
念無想)이랄까─그래서 온갖 때와 먼지에 찌든 머리와 가슴
을 세탁한다고 스스로는 농아닌 진담으로 친구에게 대꾸하기
일쑤였다.
─그것도 이제는 옛말이 됐다. 차가 없던 때는 서로가 모두
순수했었다.
그러던것이 자가용차들이 흔해지자 낚시터란 낚시터에는 차
들이 넘치고 온가족을 대동한 낚시꾼은 낚시가 아니라 「놀
이」로 하루를 즐기려 한다. 그들은 남의 생각은 추호도 할
줄 모르는 「신민주주의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피해는 조용한 하루를 만끽하려던 「참낚시인」뿐.
또한 그래서 터져나오는 탄식하나가 “이제는 낚시마저 못오
겠구나”라는 실망과 환멸감이다.
전국의 낚시터란 낚시터는 예전과 같은 「자연 그대로의 조
용한 곳이 아니다」. 그저 쓰레기더미와 소란과 마구잡이들
이 난무하여 시골사람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다.
─지난날 숱한 실타래子의 <낚시칼럼>에는 곧잘 「자연의
품에 안겨 자유롭게 욕심없이 자연을 낚는다」고 했거늘 오
늘에와서 그런 낭만은 잠고대에 불과해졌다.
요즘 낚시군들은 하나에도 둘에도 고기밖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남에게 폐가 된다거나하는 따위는 안중에 없다. 그들은 <입
어료>등 투자한 값어치를 빼려는듯 눈에 불을 킨다. 그렇게
「저밖에 모르는 소행들이 어디서 나왔을가?」
사소한 일같지만 이러한 짓거리들이 수십년동안 정치·경제
·사회에 누적돼온 우리들의 병폐가 급기야는 오늘의 IMF까
지 자초한 결과라고 보아진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했거늘─.
▼진정으로 낚시를 즐기다보면 봄·여름·가을·겨울─사계
절의 변화와 그 아름다움에서 자신의 인생을 참되게 되돌아
볼만도한 것이 인지상정일터인데 그게 아니니 한심할 뿐.
─「명심보감」에 이런게 있다.
“착한 마음으로 일을 하면 재앙이 도망가고 복된 행(幸)이
찾아든다.
당장 무슨 좋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봄동산에 풀잎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언제 그렇게 예쁘게
꽃이 피었는질 우리는 그것을 볼수 없었다.
이런 자연의 현상과 마찬가지로 착한 마음으로 좋은 일을 하
면 순간순간에 결과는 나타나지 않아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다─했다. 이와 반대로 옳지
못한 악한 짓거리를 자행했을 경우 나쁜 결과가 당장 나타나
는 것은 아니로되 복된 행복이란 찾아들지 않는다고 순순히
가르치고 있다.
▼칼을 가는 숫돌은 칼을 갈면 아주 조금씩 닳아버린다. 이
와 마찬가지로 나쁜 일의 결과는 당장 보이지 않으나 좋은
일들을 하나씩 갉아 먹으면서 드디어는 완전히 없어지는 길
로 이끌어가고 만다─고 했거늘.
─오늘의 IMF나 사람들의 각박한 이기주의들도 긴 안목의
이러한 「착한 마음」 「아름다운 마음」 「좋은 일」들로
극복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