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신록이 눈부신 가정의 달·어린이 달…조능식

1999-05-02     한국섬유신문
▶봄 사월 새 털을 입은 사슴였노라. 그 날에 환한 샘터와 철죽꽃 활짝핀 산에서 한종일을 기다린 사람은 성명도 얼굴도 모르는 소녀였노라. 먼 하늘아래 노고지리 비비비비… 이는 소녀의 속사귀는 음성이다. 나의 발 아래 솟는 샘은 소녀의 맑은 눈동자라 다박솔 사이를 스쳐 오는 바람은 또한 소녀의 숨소리라 하고 사향(麝香) 풍기는 동산에서 나 길이 살리라 바랬더니 연륜(年輪) 피빛으로 돌아서 수피(樹皮)는 주름 잡히고 수 없는 성진(星唇) 흙속에 묻혀 철따라 꽃은 난만히 피어도 상긔 음력 보름이 오면 흰 달이 교교히 한 밤을 떠가도 기다리는 소녀는 오지 않고 나의 턱 밑에 수염만 서리어 이제 지구 어느 표면에 둥근 흙무덤이 또 생기겠구나. 아 외로운 묘비(墓碑)여 새겨 논 이름자는 <보헤미안> 정처없이 표랑(漂浪)하는 천고(天孤)의 족속. 거문고 줄은 낡아 노래는 목이 쉬어 진정 뼈가 저린 가락인 것을 나의 소녀는 왜 들을 줄 모르는가? 왜 돌아 올 줄 모르는가? ▶「보헤미안」이란 박화목(朴和穆)님의 시다. -누우면 하늘처럼 가까우면서도 먼 이상(理想)인듯-허튼 대 화들이 오가는 시장바닥에 잠겨 하염없는 세월들이 날아갔음 에 마음 아파하며 봄을 맞고 또 보내야만 하는 방랑의 시인 의 속앓이를 노래하고 있다. 이제 5월이다. 꽃들이 분분하게 바람에 지고 한편으로는 신 록(新綠)이 눈부시게 만산을 뒤덮는 희비쌍곡(喜悲雙曲)의 달 이다.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긴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랴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 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이렇듯 지는 꽃을 슬퍼함은 조지훈(趙芝薰) 시인뿐만은 아 니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마음씨는 우리들의 상정(常情)이다. -강한듯 약한듯 작은 생명의 최후는 5월 훈풍에 떨어지지만 그 자리엔 신록이 꽃보다도 더 찬란하게 피어나고 5월의 환 희는 신(神)의 부드러운 손길에서 태어나는가 보다. ▶그런데 오늘 지구촌은 이상기후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구미 각국에선 무서운 태풍에다 폭우가, 또 때아닌 폭설까지 가세 했다. 지난 4월 중순경에는 우리나라 경남 하동엔 2센티나 되는 우 박으로 농작물 피해가 컸다. <기상청>은 엘니뇨 영향이라 하지만 이러다간 5월의 훈풍이 곧바로 여름으로 접어들까봐 걱정이되는 작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