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충장로 호남제일의 패션거리 부상
1999-04-02 한국섬유신문
호남의 정치, 경제, 문화 1번지로 호칭되는 광주 충장로는
1904년 일본인 이스또氏가 차린 잡화상을 효시로 1세기가 다
되는 긴 역사속에서 오늘날과 같은 번화가가 형성됐다.
일제시대 일본상인에 의해 장악되어 본정이라는 일본식 이름
으로 불리우다 해방이후 광주 출신 임진왜란 의병 김덕령 장
군의 시호를 따 충장로라는 이름으로 명명됐다.
광주·호남 상업의 역사를 담고있는 충장로는 경제, 사회 등
여러분야에서 중추적 역할을 감당해 온 유행과 낭만이 있는
활기찬 거리이다.
양복·양장점으로 즐비했던 충장로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80
년대에는 기성복 매장으로,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젊은이들
중심의 캐주얼브랜드 매장으로 탈바꿈하면서 광주의 대표적
인 패션가로 사랑받고 있다.
충장로 1가에서 4가까지의 1km 거리에는 화니·가든백화점
과 프라이비트, 패션메카 등의 대형유통업체와 패션몰 뿐만
아니라 1백여개가 넘는 의류브랜드 로드샵이 일직선으로 늘
어서 있어 쇼핑의 편의를 도모, 일일평균 1백50만명의 유동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극장과 헤어샵, 패스트푸드점, 커피숍 등 신세대 문화
공간의 등장으로 충장로는 광주 최고의 상권임을 증명하며
밤낮없이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권역별 발전없이 충장로 일직선 거리에만 집중됐던 상권이
최근 몇 년동안 포화상태에 이르자 이웃한 황금동, 광산동까
지 확장되고 있다.
광주 상권의 핵이라할 수 있는 충장로 1가에서 3가까지는 영
캐주얼 브랜드 매장이, 4가는 주단골목으로 상권 이미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3, 4가 사이에 중앙로가 생
기면서 단절역할을 하기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웃한 황금동과 광산동은 충장로에서 밀려난 보세의류 매장
과 오더샵, 웨딩샵, 음식점 등 놀이문화와 음식문화가 있는
복합적인 부대시설 마련으로 확장 가능성과 발전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는 지역이다.
금남로는 교통의 편리성으로 인해 금융기관이 밀집해 있고
지하상가가 발달돼 있으며 현재도 지하철 공사가 한참 진행
중으로 충장로 상권활성화의 일등 공신 역할을 톡톡히 해내
고 있다.
이러한 입지적 조건을 갖춘 충장로 1, 2, 3가는 지역 타 상권
보다 우위의 위치와 규모로 인지도를 높혀 대리점 매출실적
과 임대료, 지가 등을 상승시켜 가고 있다.
신세대를 타겟으로 한 캐주얼브랜드 매장으로의 전환이 발빠
르게 이루어지자 전선지중화 공사 등을 통해 거리 이미지를
정화시키고 지난 94년부터 거리문화 축제인 ‘충장축제’를
해마다 개최, 다채로운 행사를 통해 충장로를 또 하나의 지
역 명소로 부각시키고 있다.
비록 10∼20대가 선호하는 서울 유명브랜드와 젊은이들로 북
적대는 거리로 변모하고 있지만 충장로는 여전히 향수어린
낭만과 멋스러움을 간직하고 지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호남
제일의 패션거리이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