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니트, 현장의 해결사 배영자여사
1999-03-23 한국섬유신문
대구 서구 이현공단에 자리한 회전니트(주) (대표 함정웅).
의류 봉제산업의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1천1백만불의 수출실
적을 올렸다. 올해도 IMF사태 이후 늘어난 주문량에 200명
가까운 근로자가 눈코뜰 새 없다.
공장문을 들어서면 눈에 띄는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노령의
여성 근로자[배영자(裵英子):59세]를 만날 수 있다.
털털한 작업복에 노련한 자태는 금방이라도 그녀가 수준이상
의 기술소유자임을 느끼게 한다.
회전니트 설립(66년)부터 지금까지, 줄곧 봉제라인을 지켜왔
으니 베테랑수준을 뛰어넘어 장인수준까지 도달한 셈이다.
손끝마다 굳은살이 베어 거칠기 짝이 없다.
이러한 그녀가 다름 아닌 이 회사 사장이자 대구염색산업단
지관리공단, 한국염색기술연구소 이사장인 함정웅씨의 부인
이다. 그러나 그녀는 안팎으로 함정웅사장의 사모님임을 내
색한번 해본 적 없다.
출퇴근도 통근차나 짐차를 고집할 뿐 결코 함사장의 승용차
를 이용하지 않는다.
밤 10시30분에야 끝나는 잔업(화, 목, 금)도 빠지는 날이 없
다.
묵묵히 봉제라인을 맡아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취재차 들른 날도 심한 감기를 앓고 있었지만 근무에 열중하
고 있었다. 몸이 아파 한 번이라도 결근할라치면 근로자들이
『왜 출근 않느냐』는 등살에 못 이겨 출근하곤 한다.
그녀가 이렇듯 봉제라인에서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을
알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35년간 그녀는 숙련공이자 현장의 애로를 타개하는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봉제기술에서 식사, 애로상담, 품질관리, 노사
협력 등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도맡아 해결해
주는 해결사이자 「현장의 어머니」로 자리매김해왔다.
근로자들의 근지러운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역할만 해왔
으니 인기는 짐작이 갈만하다.
몸이 불편해 좀 쉬고 싶어도 근로자들이 등살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같은 배씨의 역할은 노사화합과 새마을운동, 품질관리까지
그 영향력은 지대했다.
어느샌가 회전니트 전 근로자는 주인의식이 고조돼 갔고 노
사화합은 강조할 필요까지 없어졌다.
81년 노사협조 대통령상 수상, 87년 공장 새마을운동대회 대
통령상, 90년 대구시지정 노사화합 최우수상, 94년 노사협조
추진 대통령상 수상 등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70년대말, 새마을운동의 성공적 추진에 힘입어 전 근로자가
주인공이된 「홍보영화」(국립영화제작소)도 제작됐다.
지금 그녀는 환갑을 눈앞에 둔 노령이라 눈까지 가물가물한
다.
돋보기를 항상 목에 메달고 다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몇 년전부터 재봉틀에서 일어나 공정, 품질관리에 비중을 두
고 있다.
그렇지만 잘못된 바늘땀하나도 그녀의 돋보기를 벗어날 수
없다.
베테랑의 직감은 현실로 나타나기 마련이고 적중하기 때문이
다.
11년째 봉제라인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영희 반장은 『사모님
은 무슨 일이든 현장 해결사 역할을 해주시기 때문에 근로자
들이 다투어 찾는다』고 전했다.
부러울 것 하나 없는 그녀가 『왜 늦게까지 고생을 자처하느
냐』는 주위의 만류에 거침없이 대답하는 한마디는 『끝까지
하겠다』.
그녀는 『건강이 있는 한 일을 할 것이고 또 일이 있는 것이
행복하다』는 말을 취재 중에도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함정웅사장이 염색공단과 염색기술연구소 이사장을 맡은 후
부턴 공장에 대한 애착이 더욱 많았는데 IMF사태까지 겹치
는 바람에 이러한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
다.
가정에서의 내조도 빈틈이 없다.
생산기획부 배상직부장은 『사장님이 단체장을 맡으신 후부
터 늦게 귀가하는 일이 허다하지만 잔소리 한 번 한적이 없
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편안한 가정 만들기와 주인의식으로 똘똘 뭉친 공장으로 변
모시켰기에 함사장이 마음놓고 단체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
다는 것.
뭇 사모님이 걷는 사치와 편안함을 마다하고 생산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가운데 행복과 기쁨을 찾는 「해결사 사모님」,
「현장의 어머니」야 말로 IMF시대에 살아있는 「정신적 지
주」가 아닐까 싶다.
<김영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