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태옥 프랑소와즈 사장

2001-05-22     한국섬유신문
SFAA(서울 패션 아티스트협의회)가 10주년을 맞았다. 패션이라는 ‘패’자도 모르던 이 시장에 패션 디자이 너라는 생소하고 낯설은 외길을 걸어 오면서 명실공이 국내 최고의 디자이너 모임으로 자리잡은 SFAA그룹. 최고의 모임이지만, 가장 폐쇄적이라는‘찬사’와 ‘질 시’를 한몸에 받고 있지만, 이들 그룹의 패션시장에 미치는 영향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만큼 그들은 최고의 패션디자이너로서 자리를 잡고 있으며, 각종 언론과 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강렬 히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카리스마적 파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국내 패션계의 부동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SFAA의 발전사에 있어 진태옥씨의 존재는 거의 상징 적이다. 거의 아무런 지지 없이 혼자 뿌리가 내려지고 자생한 나무처럼 패션에 황무자와 다름없는 국내시장에 디자이 너라는 직업을 선망의 자리로 올려놓은 것은 물론, 서 울발 트랜드를 외부에 제시할 수 있는 정기 컬렉션의 존립에 한몫을 다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그는 학자의 논문발표와도 비교 되는 디자이너의 컬렉션을 정기적으로 발표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그룹이 국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엄청난 자랑스러움으로서의 부각시키고 있기도 하다. 국내의 최고 디자이너 그룹인 SFAA의 정신적인 지주 이자, 자존심과 오기 하나만으로 해외시장에 ‘한국적 클래식’이라는 하나의 패션코드를 인식시켜 나온 디자 이너 진태옥씨를 만나봤다. ― 10여년 동안 한번도 거르지 않고, 국내 패션의 발전 을 위해 정기 컬렉션을 개최해 온 SFAA회원들의 열정 에 우선, 경의를 표합니다. SFAA가 형성된 계기는. ◀도쿄 CFD 첫 컬렉션때였죠. 우리 SFAA회원 7명이 함께, 잇세이 미야케 쇼를 관람하러 갔어요. 그때 당시 초청을 받은 것은 아니였으니까, 티켓은 제가 갖고 있 는 것 하나밖에 없었죠. 잇세이 미야케 사무실에 부탁 을 해봤는데, 일언지하에 거절당했어요. 쇼는 보고 싶고, 티켓은 하나밖에 없었기에 궁리끝에 아이디어를 냈죠. 일단, 티켓 하나로 제가 들어가서 제 백에 티켓을 넣고 담장에 던졌어요. 한명이 들어오고 가방을 던지고, 다시 한명이 들어오는,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짓이였지만, 그당시 우리는 모두 심각했어요. 그리고 드디어 쇼를 봤죠. 그때, 우리 모두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왜 저런 컬렉션을 우리는 할 수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넘치는 감동으로 펑펑 눈물을 흘리기만 했죠. 그날, 우리는 돌아와서 SFAA의 창단을 결의했어요. ◀일부에서는 SFAA가 지나치게 ‘폐쇄적’이지 않은 가 하는 말도 있는데. 그런 이야기는 SFAA를 시작하면서 부터 있었던 말이 예요. 그후로도 갖가지 비난과 불필요한 오해와 질시의 눈길에 인간적인 고뇌도 많았어요. 그러나 우리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노력과 자존심을 버린적은 단 한번도 없었죠. SFAA의 회원들은 이제 한국패션의 리딩그룹으로서 성 장해있고, 자신들의 캐릭터도 당당히 표출하고 있지만, 우리가 뭔가 뭉쳐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은 우리가 함 께 공유했던, 온갖 고난과 역경때문일 것이며, 이제는 서로에게 끈끈한 혈육과 같은 정을 느끼고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수입과 시장브랜드의 양면공세에 시달리고 있는 디자 이너 브랜드들의 최근 현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 십니까. ◀경기가 좋을때는 수입브랜드에 치이고, 경기가 나쁠 땐 사치산업으로 매도되면서 이럴타한 지원도 육성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착잡함은 이루 말할 수 없죠. 그렇지만, 어떻게 이뤄온 기반입니까. 이대로 한국패션 이 10년 20년뒤로 후퇴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 다. 유럽이라는 전통과 보수의 벽을 일본이 파괴해 나 가고 있는 것은 지속적인 공략과 그들의 독자적인 문화 로 포장했기 때문이예요. 한국의 패션도 문화로서 반드 시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지금 이 위기는 모든 것이 정상화 되어가는 과정 으로, 부조리한 부분이 제거되고 국내 패션산업이 발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랄뿐이죠. ―디자이너의 해외시장 개척에 대해서. 초창기에 무턱대고 찾아 간 미국 바이어가 디자인에 관심은 보이면서도 한국제품의 평균 가격과 비교하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할 때“나는 내 디자인을 팔러 왔지, 옷을 팔러 온게 아니다”라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땐, 정말 젊었었나봐요. 그러나 사실, 아무런 연고없이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최근들어 느낍니다. 뉴욕이든 파리든 한국적 에스쁘리와 정신, 그리고 얼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별다른 망설임도 없습니다. 제값을 다 받아낼만큼의 자신도 있지만, 뭔가 정책적으 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