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어드바이스> 패션은 꿈이 아닌 냉혹한 현실
2000-11-15 한국섬유신문
취재를 하다 우연히 패션을 공부하는 학생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젊고 발랄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화제가 ‘졸
업이후’로 넘어가자 갑자기 표정들이 어두워진다. 그
래도 1~2학년정도의 학생들은 막연한 희망사항처럼
‘훌륭한 디자이너’라는 꿈을 말하지만, 4학년쯤 되는
학생의 결론은‘아무데나’였다. 지금 당장 입맛대로
이것저것 가릴때가 아니라는 코멘트를 추가하며 아직은
젊으니까 좌중 대소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화려한 패션쇼를 한만큼 어느정도의 결과를 기대했지
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다는 말에는 어떤 씁쓸함마저
감돌 정도다.
졸업반이 된 그들에게 있어 세계적 디자이너라는 존재
는 이미‘꿈’이고 ‘환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인식의 미숙보다는 교육의 문제
패션의 타 분야에는 지원이 없는데 유독 디자이너의 과
정에는 학생들이 넘쳐 흐르고 막판에는 취업난에 허덕
여야 한다는 이 현실은 패션 산업이 갖고 있는 화려한
허구를 가장 극명하게 시사해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쩌면 그들이 운이좋아 그 아름답고 우아하다고만 생
각했던 스타의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꿈이 현실로
바뀌는 혹독함을 맛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호화로운 유럽의 사교계의 어느 한장면을 공상하며 나
른하게 잡지책만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왔던 사람들이라
면 냉혹한 국제경제 질서와의 접목이라는 부분에서 당
황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무모함과 인식의 미숙함을 지적하기 이
전에 이것은 패션을 가르치는 우리네 교육과정과 인재
배출방법이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가슴깊이 반성
해야 하는 부분이라 믿고 있다.
눈부신 변화속의 국제질서
패션산업을 ‘비즈니스’가 아닌 ‘꿈’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실수이다.
경제가 침체할 수록 패션 산업이 사치산업의 원흉으로
몰리고 스스로 패배의식의 늪속에 빠져 들어가야 한다
는 이유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지금 국제 경제시장의 모든 블록
은 무너졌다.
세계무대를 생각하면 차라리 외면하고 싶을만큼 변화의
속도도 요란하게 돌아가고 있다.
패션을 21세기 문화산업 혹은 굴뚝없는 소프트 산업으
로 너도 나도 외치고는 있지만, 실지로는 ‘매일 먹는
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만큼 아무 대책이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지금 아시아 패션시장의 패권은
거의 일본과 중국이 할거하고 있다.
막강한 자금력과 디자이너의 감성, 그리고 치밀한 유통
망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시장을 확대해 나
가고 있는 일본은 그렇다 치고, 중국조차 타고난 순발
력과 투자센스 등으로 지오다노, TSE, 안나스이등 자
국브랜드의 기반을 다져나가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화
된 홍콩 조이스를 통한 일류브랜드의 집중투하 정책은
우리에게 알수 없는 위압감 비슷한 두려움마저 주고 있
다.
그런데 투자가 제대로 되지 못한채 매장 어느 한 구석
에 박혀 있는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줄줄이 부도를
맞고 있는 이 시점에서 백화점의 한 바이어는 수입브랜
드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매출현황이 너무도 현격
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수입매장 우대정책이라는 것
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을 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 인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다급해진 이순간에 패션이 이미지고 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감잡은 시장공략의 결과
IMF란 결과적으로 모든 시장을 열고 공평하게 경쟁해
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주머니 판돈과 목숨을 몽땅 내건 러시아 룰렛게임의 신
호탄이 울린 것 뿐이라는 것을 모두에게 피를 토하는
체험으로 습득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어차피 패션도 이젠 이미지와 명성 만으로 물건
을 팔려고 하는 시대가 아니므로, 정당한 기준하에 공
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실력’과 ‘운’ 두가지를 겸
비하고 해외로 나가야 한다는 것 역시 필연적인 일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요즘 디자이너 업계에서는 선구자적인
시도와 함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
고 있다.
SFAA(서울 패션 아티스트)회원의 뉴욕진출을 비롯해
서 KFDA회원의 캘리포니아마트 진출이 시장의 포문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바잉시스템에 대한 사전지식 부족으로 경험없이 쇼만
열고 되돌아 와야 했던 그 이전의 시행착오를 벗어나
지금은 ‘뭔가 감을 잡았다’는 흐뭇한 후문들은 우리
를 즐겁게 한다.
일례로 얼마전 뉴욕프리미에르에 진출했던 디자이너 김
선자씨는 TPO가 명확한 리얼클로즈의 설정으로 이례
적인 수주를 받았다고 한다.
또한 LA 캘리포니아 마트에 지속적인 편집매장을 운
영하고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