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고라”토끼털의 “볼레로”…조능식

2000-01-06     한국섬유신문
▼기묘(己卯)의 새해는 「토끼」의 해다. 우리는 토끼- 하면 선량하고 온순한 동물로 치부한다. 아닌게 아니라 토끼는 전연 공격적이 못된다. 아주 오래전 토끼를 미당 한구석에서 길러봤지만 토끼 는 <부부애>가 돈독해서 숫놈은 밤낮으로 암놈의 뒤만 을 쫓고 있었다. 그래서 토끼의 생리를 잘아는 동네 친구가 암수를 한 우리에 넣어 두면 숫놈이 일찍 죽게되니 암수를 따로 넣어 두라는 귀띔을 해준 일이 생각난다. 집이던 산이던 지구촌 어디서나 서식하고 있는 토끼들 의 종류는 참으로 많다고 했다. 이것을 두 종류로 크게 나누면 소위 축용종(蓄用種)인 <집토끼>와 야생토끼인 <멧토끼>가 그 것. ▼토끼를 주인공으로 다룬 민속에는 우리가 잘 아는 「토끼전(傳)=별주부전」이 있고 「토끼타령」-즉 판소 리 열 두 마당중의 하나인 「수궁가」가 있다. 판소리 열 두 마당 중에서 토끼의 화상(畵像)만을 그리 는 대목이 재미있다. <토끼화상>은 잡가(雜歌)의 하나로 「토화상(兎畵像)」 이니 「토끼타령」이라고도 한다. 용왕(龍王)이 화공(畵工)을 불러 토끼그림을 그리도록 하는 대목을 익살스럽게 옮겼기 때문. 사설(辭說)의 첫 부분을 보면 “토끼 화상을 그린다. 토끼 화상을 그린다. 화공을 불러라, 화공을 불렀소. 토 끼화상을 그린다. 이리저리 그린다”-. ▼패션에선 앙고라의 흰 토끼털을 많이 이용하는데 이 「앙고라」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 이따금 고소 를 자아낸다. 실타래子가 젊은 신문기자시절(물론 해방전) <하얼핀> 에 취재갔다가 송화강(松花江=승가리) 변의 한 「춤 방」에 친구 두 세명과 들렸었다. 댄스·홀에는 외국인 미녀(?)댄서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녀들은 생활때문에도 일본말이 한결같이 능숙했다). 백계 로서아인이 태반이고 폴랜드등 망명해온 여성들이 인형같이 예뻤다-. 실타래子는 흰털의 볼레로를 입은 백계로서아 계땐서와 탱고의 리듬에 시간가는 줄을 몰 랐었다. 홀에서 친구들과 나와 옆방 바의 테이블에 앉았을때 친 구들은 물론 자신도 크게 놀랐다. 실타래子가 입고 있던 감색양복의 앞쪽이 온통 솜털로 도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끼-하면 1943년경의 <하얼빈>의 한 댄스·홀과 백계로서아 여성의 앙고라 볼레로, 그리고 밀랍과 같던 그녀의 미모가 추억으로 떠오른다. 주착없는 소릴 새해부터 늘어 놓아 죄송하지만 앙고라 볼레로 때문에 당했던 수난이 생생해서다. 기묘년은 예쁜 토끼같이 선하고 사랑스럽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