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피민족에 고함…박세은기자
1999-12-12 한국섬유신문
새해가 얼마남지 않았다. 바야흐로 새로운 세기를 맞닥
뜨리는 마지막 해가 다가오고 있다.
올한해 우리에겐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다. 잇따른 기업
의 부도와 실업사태, 주가폭락에 치솟는 환율, 이제까지
비지땀으로 일구어 놓은 국가경쟁력을 한순간에 상실하
는 맘고생을 모두가 겪어야 했다.
한국인 특유의 조급한 성격과 성취욕이 부른 대형사고
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발발한 이 사태에 대해 직면한
우리들은 스스로 반성할 기회라 말하며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아직 마음 놓아서는 않된다
며 더욱 긴장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국가적인 파산을 인정한지 1년, 나라전체가 침몰 위기
에서 이제 막 허우적대기를 그친 젖은 나무둥거리를 옆
구리에 끼고 IMF폭포수를 뒤로한채 목적없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 국가성장의 기반이 되기도 했던 섬유패션산업 또
한 최대의 위기속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흔들
렸다.
뿌리가 없기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급한 마음, 빨리 만들
어 빨리 팔아치우고 또다시 만들려고 하니 바탕이 없는
카피뿐이다. 무작위 카피풍조의 만연은 아직도 우리의
목을 죄고 있다.
갑작스런 매출폭락을 맞은 패션업계는 경쟁업체의 반응
좋은 신상품에 눈독을 들이며 『우리도 만들 수 있다』
는 과시욕을 한껏 뽑내는 유아적인 발상을 되풀이하고
있으며 어느어느 브랜드의 매출이 좋으니 우리도 동일
컨셉의 브랜드를 만들자는 한탕주의 사고가 만연해 있
다.
각 브랜드마다 독특한 히트상품은 없고 비슷한 히트상
품이 군림하는 등의 상품카피외에 캐주얼의 인기를 뒤
좇아 런칭대열에 늘어선 신규 브랜드들의 행렬도 그와
같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 카피풍조의 수준도 달관의 경지에
이르러 있다.
유럽바이어들은 자기들의 제품을 수출할 때 한국을 특
히 조심한다고 말한다. 거래를 위한 샘플공급만으로도
금새 비슷한 제품을 생산해 버린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뛰어난 눈썰미는 막을 수 없다나. 그래서 재값의 두세
배를 올려 리오더 없는 한 번의 거래로 손을 끊는다고
한다.
유럽의 큰 박람회의 경우도 동양인, 특히 한국인의 출
입을 노골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마찬가지로 놀라
운 카피민족(?)을 두려워하기 때문인 걸까.
이러한 국가적인 불신의 서열에 오른 이상, 세계 속의
한국은 편견에 사로잡힌채 고립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급한 마음이 국가경제의 침몰과 불행한 사고의 씨앗을
만들었다. 이를 인정하고 반성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기에는 1년이라는 시간이 있지 않
은가.
<박세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