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주부와 문화촌…조능식
1999-12-10 한국섬유신문
▼만화캐릭터 「코주부」로 한국만화계를 이끌었던
「김용환(金龍煥)」형의 별세소식을 (1일오전 로스앤젤
리스 자택에서 86세로) 오늘 아침 신문에서 접하고 정
녕 만화같이 이 세상을 살디간 그의 면모가 새삼스럽게
뇌리에 떠 올랐다.
해방전 일본에서 발행하던 월간「소년구락부」의 <펜
화>삽화(해양물·역사물등)들은 그의 스승이었던 「카
바시마가쓰이찌」의 펜화화풍을 답습하여 정확한 <데
셍>에다 기초를 두었던 멋진 그림들은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고 특히 후배들에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와의 만남은 해방서부터이다. 실타래子가 일간지
문화부기자로 있었기에 그와의 접촉은 빈번했고, 인간
적으로 가까워졌었다.
그는 검은 <베레>를 늘 쓰고 옆에다는 으례히 큼직한
스케치북을 끼고 있었다.
거의 매일같이 다방에서 만나면 부단히 그림을 그리고
있던 붓을 멈추곤 번쩍 손을 들어 반기는 순진성을 지
니고 있었다.
담배는 줄담배였는데도 술은 크게 즐기지 않았다. 그는
일본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몸에 베어버린 버릇으로
「남에게 절대로 신세 짓지 않는…」어떻게 보면 좀 인
색할 정도였다.
만화같은 얘기가 이를테면 담배 피울때 보면 안주머니
에서 담배한개피를 쏙뽑아 피웠지 담배갑을 통째로 꺼
내 놓질 않는 습관이었다.
▼실타래子가 홍제동에다 소위 「문화촌(낚시친구였던
자유당 국회부의장 “이재학”씨와 합작으로)」을 만들
때 코주부는 은근히 귀띔을 해왔다. “내 집은 다른 친
구말고 꼭 조형집 옆에다 배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른 친구 몇은 호주가였기에 그게 싫었던 것이다).
-지금 기억나는대로 손꼽아 보면 1차로 홍제동 문화촌
에 입주한 친구들은 「예총회장이던 이해랑, 작가 김광
주·유호·유주현·이진섭, 코주부 김용환, 시인 김차
영·조영암, 연극인 장민호·조항 김모, 화가 이순재·
실타래子」등이었다.
2차로 김리석·정한기등 3·4십세대의 문화인이 나중에
더 입주했지만 -(서대문구 홍제동은 당시 국회의장 이
기붕씨의 선거구였다).
▼이렇게 해서 코주부와 실타래子와는 몇년동안을 앞뒤
집(얕은 울타리에 덩굴장미를 심었었다)에서 매일 같이
서 (큰길 버스길까지 둔덕길 10여분. 얼마 안가 버스가
마을까지 들어왔지만) 출근했고 저녁 마다 식사후에는
실타래子가 울타리너머에다 대고 “코주부 커피드세
나”하고 소리치면 기다리기나 했다는 듯이 “어어이”
하고 메아리쳐 왔었다.
-그 때 코주부는 삼남매의 어머니와는 별거(-잉꼬부부
로 소문났었는데)상태에 있었고 그는 50년대말 도쿄로
아이들과 차례로 건너가 버렸었다.
오랜동안 가깝게 지내면서도 악이라곤 티끝만치도 찾아
볼수 없던 코주부였다.
늘 미소를 머금었던 굵은 로이드안경태 속에선 “세상
은 만화다”라고 웃고 있는듯 싶었던 그다.
-이국하늘 밑에서 나마 외아들네 집에서 떠나간 그의
명복을 간절하게 빈다.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