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션이 허무한 이유
2001-11-23 유수연
컬렉션이 종료되고 난 시점에서 디자이너들은 의례 ‘허탈하다’는 말을 한다.
뭔가 이뤄지는 것도 없고, 왜 하는지도 모르는 쇼들을 반복하고 있다면, 그런말이 나오는 것
은 오히려 당연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바이어가 없다는 것을 불평하는 사람들은 많아도, 실력이 부족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기술도 좋고, 눈에 띄는 작품은 많은데, 바이어가 없다는 것도 그렇고, 바이어도 없고 아무
소득도 없는데 쇼를 계속한다는 집착도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뭔가 반드시 잘못된 점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외국의 예를들면, 진정한 디자이너(꾸뛰리에)라는 호칭은 정기적으로 오리지널 컬렉션을 제
작하고 그것을 프레스나, 바이어에게 공개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컬렉션을 고객에게 보여주고 주문을 받고, 고객의 사이즈에 맞추어서 열심히 만든다는 것이
그들의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컬렉션의 복제권을 다른 업자나 의상점에 양도한다고 하는 비즈니스가 덧붙여서
오늘날에는 그산업이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 있어서도 연 2회의 컬렉션발표는 부담이다.
파리의 중심부의 작업장을 갖추고 스타일리스트, 패션모델, 봉제, 가봉등 적어도 십수명의
종업원을 고용해야 하며, 최고급의 소재를 사용해서 작업을 해야하므로, 거액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이런 지출에 대한 수입이 명확히 있다. 컬렉션으로 상승효과를 얻으려
는 라이센시 업자들로부터 들어오는 보증금이 그렇고, 바이어들로부터의 주문 , 거기에 개인
손님 오더등등 3가지가 있다.
물론, 이들 내역은 그들의 컬렉션 발표가 성공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 오뜨꾸뛰르 부분은 컬렉션에 성공한 경우는 물론, 이들 수입을 모두 합
쳐도 컬렉션의 발표에 필요한 비용을 따르지 못할 정도로 만성적자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물론, 주문이 컬렉션 비용보다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자를 내면서도 외국의 디자이너들이 오뜨꾸뛰르 부분을 유지하고 연 2회의 컬렉션
을 계속 발표하는 것은 명확히 다른 부분에서 이익을 내기 때문이다.
즉, 쇼를 계속하면서 쌓아진 디자이너의 명성, 권위, 이미지등이 프레타 포르테, 화장품, 핸
드백, 구두, 액서사리등 패션에 관련된 갖가지 제품에 이용되어 이익과 존재가치를 계속 이
어가고 있다는 점이 우리네 그것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외국의 예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디자이너에게 있어 자신과 혹은 그들을 돕는 모델리스트, 스타일리스트등의 뛰어난
창조력의 필요성이나 그 재능을 지탱시켜줄만한 숙련된 전문가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종종
맹목이 된다.
또한, 크리에이터로서 명성을 확립하기까지의 단계에서, 거액의 자금을 부담하는 스폰서들을
찾아내면서도, 전세계에서 모이는 저널리스트와 업자들의 날카로운 심미안의 앞에서 받을
수 있는 냉혹한 평가에도 익숙해 있지 않다.
디자이너들이 오뜨꾸뛰르의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이것은 아무
도 부정할 수 없고, 명확한 일이다.
현재 명성을 올리고 있는 디자이너들의 거의는 거의 모두가 선배 디자이너들의 점포에서 모
델리스트, 스타일리스트 혹은 재단사로서 숙련을 쌓아야 하며, 그들중 재능과 챤스를 잘 이
용한 지극히 소수의 사람만이 디자이너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험란한 길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제 2차대전후의 30년동안 파리에 새롭게 등장한 꾸뛰리에가 1백 6명, 1960년 이후의 1년동
안에는 겨우 7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잘 시사해 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디자이너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달고 컬렉션인지 패션쇼인지 구분도 없이 의미없는
쇼를 자랑하기에만 바쁜 일부 패션 디자이너들에게는 또하나의 의미없는‘바담風’ 과 같은
말인지도 모른다.
/ 유수연 기자 yuka316@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