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산업 활로는 원칙고수뿐

2001-12-14     KTnews
“한국 섬유산업은 경쟁력이 있습니까? 섬유사업을 접고 싶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나 오지 않아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요즈음 들어 필자가 업계서 자주 듣는 말이다. 섬 유인 대부분이 한번쯤 심중에 간직해 온 생각이라고 여기면서도 최근 섬유인의 사업무기력 증 확산에 접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당혹스러운 것은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명색이 섬유전문기자로 자부하는 필자로써도 결론은 항상 유보하는 입장에 서게된다. 솔직히 섬유인 가운데 기자에 게 속내를 털어놓고 사업철수 자체를 자문하는 경우도 그리 흔치는 않다. 대부분 비전을 놓고 총론적인 측면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최근 섬유인 의 일련의 행태를 보면 자포자기하는 모습을 적극 투영시키고 있다. 그것도 견실하다고 알 려진 중견기업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 기업들이 공공연히 사업철수 이유로 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다. 즉 현재와 같은 생 산·판매 구조로는 도저히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필자가 우려하는 것은 이들 기업들이 보여주는 업계위상이다. 극단적으로 제품개발이나 마 케팅 측면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있는 기업조차 현실에 대한 장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진로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坐不安席이다.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한마디로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선도업체마저 산적해 있는 국내섬유업계 과제를 극복치 못하고 결국 사업철수를 심각하게 거론하는 정도, 이것이 현재 국내섬유산업의 현주소라는 점이다. 혹자는 너무 針小棒大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펼친다. 그러나 섬유업계 현실을 냉철히 들 여다보면 이는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오히려 이만큼 굴러가고 있는 것 자 체가 신기할 따름이다. 편법을 미화하는 대표적인 표현에‘商道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솔직히 한국 섬유업계 의 실상은 편법의 극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貶下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점서 필자가 거리낌없이 섬유업계에 던지고 싶은 화두는“원칙에 입각한 생 산·판매 행위에 얼마나 충실하느냐”는 것이다. 만약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섬유인이 많 다면 한국섬유산업의 장래는 밝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그 반대면 암담하기가 그지없다. 한국 섬유산업 미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것과 같다. 최근 섬유기업들의 섬유사업 철수론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섬유업계의 과제인 원칙론은 결코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다. 수출경기가 좋았던 시절에도 원 칙론은 제기됐었지만 有耶無耶였다. 결국 有耶無耶된 원칙은 편법을 낳았고 지금 되레 한국 섬유업계의 발목을 잡고있다. 섬유한국을 둘러싼 주변 환경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후진 국들의 섬유산업투자나 중국의 섬유육성책 등은 우리를 위협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특히 원칙을 바탕으로 한 후진국들의 공세는 한국섬유산업의 고질적인 질환을 치유하기보다 는 더욱 약삭빠르게 변칙의 수법을 낳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러나 이제 변칙은 통하지 않는다. 변칙이라는 토대 위에서 지탱해 온 한국섬유산업의 경 쟁력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다. 섬유선진국을 보자. 이태리나 일본의 공통점은 품질대국이 다. 품질대국은 다름 아니다. 원칙을 원칙으로 알고 얼마나 충실하게 지켰느냐가 잣대다. 그러나 국내섬유업계는 이를 비아냥거리듯 마냥 물량위주·대량생산에 맛들여 왔다. 결국은 자기발 등만 찍는 악수였지 않는가. 이제 허구한날 클레임이나 언페이드 당하는 치욕적인 생산·판매행위는 이쯤서 접자. 바로 과정을 거스르고 빼먹는 것 이제 그만두자는 뜻이다. 비록 늦었어도 지금부터라도 섬유인 모두 원칙을 습관화하자. 한국섬유산업의 경쟁력은 무궁무진하다고 단언한다. 그것은 다름 아니다. 선진국 못지 않은 생산구조 틀을 갖추고 있고 개발·생산 노하우 또한 후발국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 제는 우리 스스로 장점을 직시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 같은 관점서 동남아 후진국이든 중국이든 섬유산업에 관한 한 아직은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다. 다만 우리 스스로 그동안 조급증에 젖어왔었다고 인식하면서 개선해 나가면 된다. 그렇다고 경계의 시선을 늦출 필요는 더더욱 없다. 有備無患의 의미만 의식하면 된다. 단적으로 원칙을 지키든 않든 섬유사업을 포기하든 않든 이는 섬유인 스스로의 몫이다. 최 근 업계에 팽배하고 있는 섬유회의론 역시 그 연장선의 일환이다. 분명한 것은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고 원칙에 입각한 생산·판매가 한국섬유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