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잃어버린 디자이너
2001-12-18 유수연
영화 레드바이올린의 운명
프랑소와 지라르 감독의‘레드 바이올린’은 바이올린의 장인 부조티가 만든 명 바이올린의
윤회적 운명을 통해서 조망한 ‘윤회’에 관한 이야기다.
캐나다와 이태리 합작 영화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무대에서 호평을 받은 이
작품의 줄거리는 생애의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지만, 아내와 아이가 연이어서 죽는 부조티의
절망과 비탄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랑하는 이들의 무덤속에 묻어 버린 바이올린.
도굴꾼의 손에 의해 수많은 소유주를 거치게 되고, 대륙을 오가면서 아주 극단적이고 다양
한 체험을 거듭하던 바이올린은 결국 부조티의 아내의 피와 머리칼로 만들어진 ‘영혼이 깃
든 작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난 가격의 경매에 붙여지게 되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기꾼의 품에 빼돌려 진채, 또다른 인생을 맞게 되는 핏빛 바이올린의 뒷모습이였
다.
이름을 돈으로 파는 브랜드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부도가 난 당시 내 이름도 같이 무덤속에 묻혀 버린 것이라는 사
실을 깨달았다’
기라성같은 기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져 버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점점 멀어지는 작품들에 상
처받으면서도 자신의 이름만큼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한 디자이너가 내린 이 영화의 감상
이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적으로 지칠대로 지쳐버린 한 디자이너의 영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
득, ‘레드 바이올린적 윤회와 디자이너의 명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린 것은 그가 너무도
담담했기 때문만은 아니였다.
모든 것을 포기해야만 했던 디자이너와 그의 유명세를 이용한 브랜드의 존재성이 마치 영혼
이 깃든 작품에 대한 의미로 오싹할만큼 현실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실력과 명성을 쌓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
도 할 수 없다는 것.
브랜드를 빼앗긴 채, 발판을 잃어버린 디자이너의 비통과 슬픔뒤에는 이름을 돈으로 바꾸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만이 있다.
마치 경매에 붙여진 가짜 바이올린을 팔아 먹듯이 그의 이름은 다시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
며, 언젠가 그 브랜드는 ‘영혼이 없는 옷’으로 외면당해버리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진정 패션을 사랑한다면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감히, 어떤 누구가 나서서 부도라는 사실에 대의 명분을 내세우고 ‘디자이너의 명예’를
존중해야 하며, “브랜드를 살려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중요한 것은 브랜드 하나를 키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며, 그만한 디자
이너를 키운다는 것은 그보다 몇백배의 고통과 투자가 앞서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이것은 개인의 역사와 추억속에도 배어 있는 그 그리운 이름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
한채, 사라져 갔다는 사실은 이 나라가 아직도 인스턴트적 열풍속에 ‘명품’하나 내지 못
하고 있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주인과 이름을 잃어버린 레드 바이올린과 흡사했던 디자이
너의 신념이자, ‘슬픈만큼 힘이 생겨나며,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새로운 기회를 느낀다’며
오히려 희망을 말할수 있는 용기이다.
경제 불황의 그늘에 휩싸여 대대적으로 몰락해 가는 구세대의 경영 패턴의 한계가 두드러지
면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던 민망함’을 감수해야 하는 이 시점에서도 우리에게
선택하고 가야할 길은 여전히 펼쳐져 있다면,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서 다시
싹트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그길이 이전처럼 개인과 집단의 사리사욕을 위해 독선적이고 강압적
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닌, 모두의 이익을 위해, 장기적인 비젼을 갖고 서로를 인정하고
키워 가는 길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즉, 이말은 브랜드를 키운다는 것이 더이상 ‘이름을 돈으로 바꾸는 일’의 대처단어도 아
니며, 진정 패션을 사랑한다면, 뭔가 장기적인 차원에서의 지원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후회없는 길 선택하기
사람들은 모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살아간다.
그러므로 후회란, 단 1분후의 결과조차 예측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도박과 같
은 인생에 대한 마지막 항변과 같은 것이다.
최근들어, 내노라 하는 간판급 기업들이 어이없이 무너지고, 잘나가던 사람들이 한방에 사라
지는 모습들을 하루가 멀다하고 접하게 된다.
그리고 끝없이 추락하는 경제 불황을 피부로 느끼면서 ‘조금만 더 잘했다면…’이라는 후
회의 소리도 드높아지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도 깊어지고 있다.
어쩌면 지금의 현상은 유년기의 기아체험과 청년기의 생존 경쟁 체험등으로 ‘누구를 밀어
내고라도 앞에 나서야 한다’‘이겨야 한다’는 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