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매혹된 사람들

2002-02-20     유수연
아름다운 시절로 타임슬립 “라이오넬리치와 다이아나 로스가 함께 부른 ‘Endless love’를 들으면 초등학교 시절 대 청마루에서 수집한 우표를 정리하던 생각이 난다.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을 들으면 숨막 힐 듯이 정막을 깨던 그 매미울음 소리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의 어느 여름날로 나는 돌아 가 있다. 조정현의 ‘슬픈 바다’를 들으면 미소가 아름답던, 첫사랑의 옆에 서 있다.…”하 루에 두번 마주치는, 해뜨는 그리고 어두워진 한강…으로 이어지는 이글은 어느 통신에 올 라온 한 네티즌의 ‘나를 외로움에서 구해주는 소중한 기억들’ 중의 일부이다. 꼭 이글 때문만은 아니여도 가끔씩 기억속의 자신을 그리워 할때가 있다. 비틀즈에 심취한 옆집 오빠들의 기타소리… 빛바랜 꽃무늬 커튼 아래 레이스가 곱게 깔린 엄마의 화장대… 화병속의 들국화와 코티분의 향기…쥬디 갈란트의 Over the rainbow를 흥 얼거리며 느끼던 가을햇살… Wizard of Oz속의 도로시가 걸어가는 노란 벽돌길등이 막연한 어떤 느낌만을 위해 세월을 기다릴 수 있었던 나자신의 투영된 모습이다. 그리고 분명, 이것은 천금을 주어도 바꿀 수 없는 풍요속의 외로움처럼, 쌉싸름하게 왔다가 사라지곤 하는 추억의 조각들이기도 하다. 복고의 교과서…프라다의 성공담 실제로 요즘 한 유명 백화점에서는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중년층들을 구매의욕을 자극 하기 위한 특별 이벤트가 한창이다. 꼬질꼬질한 똑딱이 단추가방부터, 있는 힘껏 풀을 먹여 자존심을 과시했던 다 떨어진 교복. 그리고, 유난히 작아 보이는 나무책상과 걸상들이 사람들에게 약간은 ‘의아하게’제각각의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물론, 마케팅적으로 결코 세련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느닷없이 흑백사진을 꺼내 보 여 주고 있는 듯한 느낌과 흡사하여,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다 그리운’ 사람들의 눈길 과 발길을 잡아두는 정도의 효과는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전세계의 트랜드를 장악해 버린 이태리의 ‘프라다’성 공신화도 바로 사람들의‘침잠된 추억’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이들의 히트비결은 무엇보다도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또 누구보다 ‘빨리’ 캐 치해 내는데 있었다. 예를들어, ‘프라다’가 만들어낸 최초의 이미지 소스는 재클린 케네디.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Oh No!’만을 외쳐댈 수 밖에 없었던 가련한 그녀가 입은 핑 크빛 샤넬 오뜨꾸뛰르 수트. ‘프라다’는 절망적인 운명앞에서 너무나 화사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와 미국의 하이클래스 들을 전형적인 이미지를 아주 귀족적이고 깔끔하게 재탄생시켜 낸 것이다. 그 이듬해 프라다의 테마는 미국의 평범한 아줌마들이였다. 시대는 여전히 50~70년대이지만, 이를테면, ‘내사랑 지니’나, ‘왈가닥 루시’와 같은 대 중문화가 한창 꽃피던 시대의 미국 중류 가정과 안방에서 즐기는 TV오락프로 시대 주인공 들에게 포커스를 두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이런 이미지는 가구의 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쳐 50~70년대 유행한 플라스틱 가구가 최 근 유행되기도 했다. 컬러 역시 그린 황록, 옐로우, 오렌지, 스카이블루등이 마크되었으며, 무늬도 단연 기하학 무 늬와 꽃무늬. 게다가 옛날 커튼과 카페트. 책상보로 사용했던 촌스러운 큰 꽃들. 그 화려한 촌스러움이 오히려 ‘귀여움’으로 부각시켰다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지만… 또다른 키워드 ‘밀리터리 룩’ 그런의미에서 지금 세계 패션의 키워드는 여전히 풍요로운 사람들의 ‘춘삼월 호시절’을 자극하는데 있다. 물론, 요즘같이 다양성을 추구하는 시대에, 하나의 유행을 규정한다는 것은 다소 위험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가장 기본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밀리터리 룩’. 이를테면, 2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주연한 영화 ‘애수’와 같은 이미지다. 거치장스러운 장식을 일체 배제하고, 어깨와 바디만을 강조했던 일종의 전후 실용복이였음 에도 불구하고, 황량한 세상앞에 버려진 연인들을 슬프도록 용감하게 보여주었던 트렌치 코 트, 그리고 밸벳 재킷과 카고 포켓, 에폴렛(견장)등을 사용한, 셔츠 드레스, 매니쉬한 더블 밀리터리 코트와 유니폼적인 냄새를 풍기는 피코트등이 역사의 무덤속에서 깨어나 다시 엘 레강스하고 클래식하게 재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리얼클로즈 개념과 함께 오는 감성 사실, 우리에게 있어 밀리터리 룩이란, 군용물 아니면, 예비군복의 얼룩무늬, 혹은 제대군인 들이 걸치고 다녔던 군복바지 정도이다. 그리고 전혀 행복하지 않았으므로, 밀리터리 룩이란 단어만큼 세련됐기 보다는 조금은 촌스 러운, 그러면서도 아주 경제적인 느낌이 주기도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