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국내 디자이너를 살려라”

2002-03-28     유수연
요즘 항간에는 재미있는 소문이 떠돌고 있다. 프랑스 일본등지에서 방한한 유통 전문가들이‘한수 배우겠다’는 자세로 국내 백화점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는 뉴스가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고자세를 유지할 수 있으며, 입맛대로 골라가면서 장사를 할 수 있는가를 아주 희안해하며 그 전략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말을 들었을 때, “죽었다 깨어나도 배우고 가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고소를 금치 못했던 대목으로 기억한다. 백화점에 들어가면, 죽어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들어가지 않으면 그나마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인 이나라와 풍부한 문화의식과 선택의 폭이 다양한 자국의 현황을 잠깐만 체크해보면, 이나라가 왜 백화점 왕국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금방이라도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파리는 참으로 매력이 넘치는 도시였다. 아름다운 거리, 길고 긴 역사의 중후함, 미술관과 극장들. 멋진 부띠끄와 레스토랑. 이거리를 걸으면서 지루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려한 파리의 패션도 그런 매력의 하나였다. 샤넬, 디올, 가르뎅, 이브생 로랑등. 디자이너들의 이름이 전 세계 멋쟁이들의 관심과 동경을 한몸에 받으면서 승승장구를 하고 있는데, 라파이에트, 마르셰 백화점들이 어디에 그 명함을 내놀 수 있다는 것인지, 마켓조사같은 것은 해보지 않아도 금방 파악할 수 있는 분위기 아니였던가. 그런데, 우리나라는 전혀 문화라는 차원과는 거리가 멀다. 물론,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우리네 현대사와 환경이 그렇게 우리를 삭막하게 만들었다. 하루하루 살기가 급급했는데, 진품과 진실이 어떤 의미가 있겠으며, 획일화된 교육속에서 ‘개성’이라는 단어는 왕따의 대처단어 바로 그것이였다. 그렇게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온 운명에 대해 자학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소비자들은 진품을 가려낼 수 있는 눈이 별로 없다. 문화적 혜택을 입지 못한 사람들은 획일화된 백화점 브랜드를 맹신할 수 밖에 없다. 일단, 동네구석구석마다 무료 셔틀버스가 돌아 편하기가 한이 없다. 물건을 사고도 맘 변하면 큰소리로 떠들어 대면 무조건 돈으로 다시 바꿔주는 백화점인데, 소비자 지상주의로 말하자면, 지상 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백화점 지상주의의 한계는 백화점의 손바닥 위에서 죽어가는 국내 디자이너 들의 운명에 있다고 생각한다. 로드샵을 키워나갈 수 있는 주변의 환경은 여전히 열악한데, 평당효율을 따지는 백화점들의 계산기 앞에서 맥못추고 자리를 내줘야 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일부에서는 우리네 수입 관세 13%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너무 적은 것이며, 수입브랜드들은 백화점 수수료와 관세등에서 터무니 없는 대우와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자탄하기도 한다. 주변환경과 같이 발전해야 하는 국내 디자이너들이 백화점 콘크리트 바닥안에서 매출강요와 동질화에 삭막하게 시달리다 사라져 갈 수 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에 대한 울분이기도 하다. 고통받는 것은 백화점도 마찬가지일텐데, 비난의 화살은 언제나 그들을 향해 끝없이 쏟아진다. 「갖은자의 횡포」, 혹은 사업의 어떤 신념도 철학도 없는 「거대 임대업자」라는 명패가 내걸린채, 그간 승승장구 자신만의 배만 불려 왔다는 죄목으로 그 흔한 동정도 받지 못한채 여론재판에 내몰리고 있는 듯한 모습도 보게된다. 그러나 쉽고 잘되는 장사를 골라가며, 시대의 조건에 맞추어서 적당히 잘 살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모두의 생각대로 지금 시장은 아예 기형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가끔씩 거대 백화점의 세력다툼속에 희생되고 있는 많은 브랜드들의 운명들이 풍전등화에 몰려있는 모습을 본다. 기업윤리와 신념, 그리고 철학이라는 것도 역시 가야할 방향조차 아무도 모르고 있는 우리를 갑갑하게 하는 거창한 테마들이다. 한쪽입장만을 고수하는 여론재판식 비난에는 쉽게 동조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백화점도 지금까지 자기 위주의 경영을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경영적인 단어로서의 고객만족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관계자들의 머릿속에 입력된 기업철학과 미래비젼은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순간적으로는 감미롭지만, 수입브랜드들 뒤에 숨어 국내 디자이너들의 자생능력을 약화시켜 온 결정적인 역할을 해오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아무리 해도 변신과 개선의 명분을 주지 못하는 이 혼돈의 시절에, 이렇게 낮은 목소리로 주장하는 낮은 목소리들을. /유수연 기자 yuka316@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