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밟기’
2002-04-11 KTnews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지만 ‘인간’은 어찌 보면 가장 단순한 육체적, 정신적 구조를 가진 하찮은 존재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자신의 뒷모습은 거울을 통하지 않고서는 볼수 없으며 단순히 앞만 볼수 있게 조물주가 설계(?)해 놓았다.
이 뿐인가? 일상생활속에선 자신의 등조차 긁을수 없게, 그래서 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앞만 바라 볼 수밖에 없어서 인지, 자신의 허물보다 남의 뒷모습이 눈에 먼저 들어 온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땜에 일이 안풀리고, 그래서 우리조직은 낙후되었고... 등등 마치 자신만이 가장 합리적이고 허물이 없는 존재여서 몸을 담그기에 안타깝다는 식이다.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누구나 자신이 속한 조직이 제일 낙후 됐을거라고 한탄하며 현실에 발을 붙이지 못한다.
그래서 인지 ‘내 탓이오’란 운동이 한창 시행됐었지만 우리사회에선 별반 호응이 없는 듯하다.
지난해 기자가 본 모 행사에서 다수 디자이너들의 패션쇼가 있었다.
그런데 특이할 만한 것은 먼저 패션쇼를 끝낸 디자이너가 다음사람의 약점을 잡는 식으로 끝없이 꼬리를 물고 험담을 해 댔다.
그러나 뒷풀이 장소에서 다 같이 모였을때는 얼마나 다정해 보이고 세련된 접대용 멘트가 오갔는지 그 전에 어떤일이 있었는지, 무색케 할 정도였다.
기성 패션기업도 마찬가지. 기자가 찾아가면 다른 경쟁업체의 이야기를 하다가 급기야는 그 기업의 단점을 꼬집고 “누구는 어떻다고 하더라......”등등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러나 손해본다 싶으면 “요즘 매체사정은 어때요?”라고 같은 입장에서 상대 매체 헐뜯기를 무언의 암시로 종용하려 든다.
그러다 매출저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영업측에선 “기획이 시원치 않아서”라고 하고 기획측에선 “영업에 순발력이 없어서”라며 한 회사내에서 영업과 기획부문이 서로 공방전을 벌인다.
그것도 너무나 자세하게, 분석까지 해 가면서. 참으로 대단한 분석력이어서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타인의 뒷모습을 세밀히 보고 가슴에 새겼을까?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래도 양반격인 관계자는 “경기가 나빠서”라든가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로 거시적이고 대외적인 책임미루기를 하는 편이다.
본기자도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허물보다는 남의 허물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보면 가끔 본질을 왜곡할때가 많고 자신을 들여다 보는 기능이 마비되는 것도 같다.
“세상은 자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어느 현인의 말처럼 처한 환경속에서 개개인이 모두 자신의 책무를 다한다면 우리 업계는 최선의 조직을 갖추고 선진화를 향해 달릴것으로 믿는다.
/이영희 기자 yhlee@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