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창조정신…

2002-05-19     KTnews
“OO제화는 자신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디자인을 전개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데...”라는 질문에 모 제화업체 관계자는“기자님 그거 욕이에요. 주위에서 하도 그렇게 말하니까 카피를 하고 싶어도 부담돼서 못해요. 매출을 높이려면 어느 정도 카피는 필요한데...”라고 대답했다. 모 백화점 바이어의 말이다. “솔직히 브랜드 라벨 제거한 후 제화업체 사장님들 모셔놓고 자기 회사 제품 고르라고 해보세요. 아마 못 찾을걸요?” 이와관련 제화업계 관계자들은 반문한다. “좁은 매장에 몰아넣고 매출만 쪼아데는 사람들이 누군데...”라고. 카피가 워낙 일반화돼다 보니 심혈을 기울여서 내놓는 베스트 상품을 일부러 늦게 출시하는 사례도 생겼고 각 집 상품을 하도 카피해 정작 브랜드 색깔을 잃어버린 업체들도 생겼다. 별로 새삼스럽지도 않은 얘기지만 제화업체들이 마치 하나의 큰 회사에서 일괄적으로 생산되는 것처럼 색깔을 잃고 있는 원인에 대해 백화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과거 로드샵 중심의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싸롱화가 백화점에 진출하면서 90년대부터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곧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매출에 쫓겨 과거 장인정신은 희석되고 변형돼 버린 것이다. 예전에 이런생각을 해봤다. 왜 우리나라 구두는 고유 브랜드를 갖고 해외 시장으로 수출되지 않을까?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그 해답을 얻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모 제화업체 관계자는 수출을 위해 해외 백화점 바이어들과 수차례 접촉했다. 그 결과 답변은 메이드인 코리아는 안된다는 것이다. 도무지 색깔이 없고 이태리제품과 똑같은 디자인인데 이태리 제품을 사고 말지 누가 한국산 구두를 사겠냐고 반문했단다. 최근에는 경쟁업체 라스트를 사용해 생산, 판매하는 어처구니 없는일도 벌어졌다. 거래를 중지한 하청공장에서 유출된 라스트가 경쟁업체로 넘어갔고 이를 알면서도 똑같은 제품을 생산 매장에 전개했다. 그 업체 관계자는 기자에게 “저희 회사는 카피를 지양해요.”라고 자신있게 말한 업체였다. 한마디로 매출을 위해서는 1%의 노력도 최소한의 자존심도 세우지 않겠다는 의지다. 제화업계에 카피는 일반적인 현상이 돼버렸다. 경쟁업체 베스트 상품을 바로 카피해 매장에 푸는 것을 탓하는 사람도 없다. 생산자도 판매자도 소비자도 모두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짜피 이태리에 가서 유행되는 제품을 근간으로 생산하는데요. 저희 회사만 보겠습니까? 똑같은 제품보고와서 만드는데 당연히 비슷할 수 밖에요.” 카피도 창조다. 적어도 99%를 카피하고 1%만이라도 색깔을 낼 수 있다면... /백현우 기자 hyunu@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