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Advice]이익보다 소중한 신용
2002-05-30 유수연
백조로 분한 까마귀
잘나가는 패션몰의 가방점에 섰을 때, 판매원은 야릇한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물었다.
“루이비통·구찌·샤넬 보여드릴까요?”
“정말요?”
뜻하지 않게 가짜명품을 구경할 수 있는 자리가 되어버린 만큼, 무턱대고 관심을 보이는 내 눈앞에 어디서 꺼냈는지, 검정 비닐봉투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가짜를 어떻게…?”라는 속마음을 읽었는지, 판매원은 어느새 매뉴얼을 펼쳐들고 빠르게 말했다.
“이게 가짜를 구별하는 법이예요. 여기 보이시죠? 이부분이 없으면 가짜고, 이부분이 있으면 진짜예요. 근데, 완벽하잖아요? ”
자랑스럽게 짚어주며 말하는 판매원의 손가락을 따라 몇줄 읽어본 진품과 가짜를 구분하는 일본자료는 아예 가짜를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교과서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참 이것저것을 비교 검토를 하고 난후에, 명품의 사촌쯤되는 지갑하나를 들고 돌아서면서, “진짜를 사면 정말 바보다…”라는 말을 몇 번이고 되뇌였을만큼, 그 판매단계가 상당히 이론적이였다는 것이다.
기술력으로 마비된 창조력
이럴때, ‘우리나라가 OEM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은 디자인 창조력이 요구되고 있는 이시대에 있어 너무나 큰 장애가 되고 있다’는 말은 참으로 시사적이다.
‘언뜻 보기만 해도 꼭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완벽한 기술력은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켰고, 거기에 미래를 예측하고 투자한다는 마인드 역시 “쓸데없는 헛삽질”로 매도시켜 버렸다.
그도 그럴것이, 버스를 타거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 줄을 선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며, 눈치껏 새치기 하고, 빨리 앉고, 밀치고 뛰어 내리는 것이 삶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몸으로 읽혀온, 사람들에게 있어, 이런 카피나 상표권 위조등은 죄도 아닐것이다.
가짜범람…예고된 시나리오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물건을 고를때의 기본은 어디까지나 남보다 좋은 것을 싸게 구입하고 싶다는데 있다.
그 ‘싸고 좋은 것’이란 애매하고 막연한 니드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물건을 파는 많은 판매업자들은 저렴한 인건비를 활용한 해외 생산 제품을 도입하거나 해외의 오리지널 상품이나 라이센시 상품을 국내에서 생산하는등, 갖가지 방법으로 모색해야 한다는 것 역시 경제 원칙중의 원칙일 수도 있다.
그리고 번거로운 계약에 기초하며 라이센시 소유권자들에게 로얄티를 지불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여, 선전 광고활동, 품질과 브랜드, 이미지관리, 서비스등에 수반되는 모든 비용부담은 소비자들의 몫이였으므로, 임금의 지불과 판촉비의 부담이 배제된 이런 위조상품 제조업자들의 활동은 어쩌면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다 좋은 상품을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다는 의미로서, 별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졌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오리지널 상품을 별도의 루트를 통해 재주껏 시장에 풀어놓을 수 있는 병행수입제도 성행하고 있는 요즘에는 브랜드들도 해외의 갖가지 단계를 거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세관에서 조차 단번에 파악하기도 힘들어 졌으므로, 가짜 상품의 범람은 예고되어 있는 시나리오인지도 모른다.
국제화 시대…모두가 피해자
매일 눈만뜨면, 누구보다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사입해서 판매해야 한다는 가격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소매점의 입장에서 값싼 위조상품이나, 병행 수입 상품의 사입은 목마른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와 같은 것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조상품에 의한 피해는 메이커나 소비자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판매하는 소매점이야말로 최대의 피해자라고 할 수있다.
다시말해, 정규 대리점이나, 메이커에서 사입하는 제품에 비해, 상품에 대한 보증이 빈약한 이들 병행수입제품이나 위조상품을 오리지널 상품인줄 알고 도입했다고 하더라도, 어느날 느닷없이 날아올 변호사의 내용증명우편, 즉, 상품권 시비를 각오해야 하는 곳이 바로 소매현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명 브랜드 메이커나 정규 대리점들은 위법 상품의 적발을 위해 거래업자들에 대해, 경고의 단계를 거치며 주의를 환기시키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해외 메이커들은 위조상품의 식별방법이 공개되면, 다시 그것을 악이용하는 악덕업자가 있다는 이유로 일체 정보를 흘리지 않은채 재판소로 직행하는 메이커도 있으므로 더더욱 그렇다.
처음부터 위조상품인줄 알고 판매한 경우라면, 억울할 것도 없겠지만, 오리지널 상품인줄 알고 판매해 온 사람들에게는 이런 송사는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다.
상도덕과 양심이 중요한 이유
그러므로 이젠 가격 파괴도 좋고 병행수입제도 좋지만, 문제는 우리시장이 그만큼의 상도덕과 양심이 정착되어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다.
우리끼리 뜯어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