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이데아 서울이 가는 길”

2002-08-29     유수연
처음 패션소재수주회(코리텍스-인스파)가 ‘이데아 서울 (IDEASEOUL)’로 재탄생되었을 때, 명칭을 단순화하면서 21세기의 비젼을 담겠다는 한국패션소재협회의 의지가 강력히 반영된 결과로 사람들의 기대를 한데 모았다. 그리스의 철학용어로서 어떤 ‘이상’이나 ‘극치’,‘최고’라는 어원을 갖고 있는 ‘이데아’의 의미 그대로를 ‘서울’과 연결시켜 국내 최고의 소재전시회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 출발한 만큼, 주최측은 보다 국제적인 행사로 발돋음하기 위한 장기비젼을 제시하기 위해 언제나 노력해 왔다. 이데아 서울이 이데아 교토(현 교토 스코프), 이데아 코모, 이데아 비엘라등 세계적인 유명소재전시회를 연상시키고 있는 점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업계에게 상당한 의욕을 불러 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창기98/99 추동 ‘이데아 서울’은 사상초유의 경제위기속에서 7백여명의 참관인들을 모으는 ‘쾌거’를 기록하기도 했다. 물론, 이것은 소재가 패션에 미치는 영향이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도 있었지만, 환율급등으로 국산소재로의 전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IMF특수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도 있었다. 환율이 1천 7백원대로 뛰어오르고 어패럴의 부도소식, 감량 감원소식이 꼬리를 이으면서 E사 S사등 대부분 수입소재만을 사용해오던 업체 바이어들이 나타나면서 어려운 외부조건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국산 소재 회귀’라는 희망을 보여주기도 한 이데아서울. 당시 참가업체들 사이에는 원료가 상승을 인식, 가격산정을 할 수 없어 반쪽자리 상담밖에 할 수 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데아 서울은 폐쇄적으로 순수 전시수주상담만 진행했던 애초의 라인에서, 트랜드와 섬유제품 생산기지의 다변화 분석에 대한 세미나등을 강화하는등, 비록 많은 청중을 동원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정보수급차원에서 전시회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는 주최측과 운영위의 열성은, 참관객들에게 이데아 서울의 발전적 성장에 긍정적인 기대를 모아온 것도 사실. 그러나 모직물 컨벤션 KWC, 서울스토프, 프리뷰 인 서울등 비슷비슷한 소재전들의 개최가 이어지면서, 관련 어패럴업체들과 일부 소재업체들의 소재전시회에 대한 통합론은 때마다 불거지는 이슈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전반적인 국내 경기 침체와 어패럴 메이커의 위축은 IMF당시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소진할 재고도, 특별히 개발해낸 소재도 없는 상태에서 내수중심의 업체들이 대폭 빠져나가고, 기동성있는 수출업체들이 그 자리를 채워, ‘살기 위해서는 수출밖에 없다’는 지금 업계의 분위기에서 변신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이르르게 된 것. 그러나 수출업체들의 내수시장 탐색전의 의미에서 어패럴 메이커들의 집객력이 떨어져 있는 것은 물론, 수출 전시회로서 파워부족의 현상은 여전히 이데아 서울이 넘어야 될 큰산으로 남아 있다. 그런의미에서 한국 섬유 패션소재협회 회원들은 이데아 서울에 대해 뭔가 구성이나 홍보면에서 차별화가 될 수 있는, 좀더 강도있고 눈길을 끌 수 있는 전시회의 형태로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한국패션섬유협회의‘이데아 서울’이 PIS(프리뷰 인 서울)와 PID(프리뷰 인 대구)와의 접합점에서 뭔가 색다른 역학관계를 적극 모색해 가려는 움직임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제9회 ‘이데아서울’은 패션 소재업계의 대대적인 세대교체는 물론, 전시회 자체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는 일종의 전환점의 상징으로서 의의를 둘 수 있다. /유수연기자 yuka316@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