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어온 광장시장 100년

“IMF 침체이후 새로운 도약 선언”

2001-09-08     유수연
사람냄새로 이어가는 역사 화려한 백화점과 24시간 잠 안자는 대형 할인매장, 편리함을 내세운 인터넷 쇼핑이 활개치는 세상의 한편에 세월이 비켜간 곳이 있다. 첨단의 빌딩숲 안에서 예전의 부귀영화는 사라지고 없지만 길게 늘어져 있는 흰 차양 아래 사람들의 웃음과 눈물, 땀방울이 한데 어우러져 소위 ‘사람냄새’로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종로 광장시장의 존재가 바로 그것. 대낮에도 훤히 켜진 백열등… 포목점 바로 앞, 좌판에는 자반 고등어가 짠내를 풍기고 그 옆 가게에는 새색시 마냥 수줍은 이바지 음식들이 진열돼 있다. 과거 장안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권세가들이 장을 보러 다니던 곳… 지금도 강남의 노부인들이 마실삼아 장을 보러 오기 때문에 허튼 물건은 갖다놓지도 못한다는 곳. 아무리 난다 긴다 하는 디자이너들도 반드시 거쳐가야 할만큼 고급스러운 기지들이 즐비한 이 시장에서 탄생한 재벌도 많다. 자유당 말기‘정치깡패’ 이정재가 시장순시에 나서면 ‘감히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는 이곳은 70년대까지만 해도 가만히 서있는 사람까지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을만큼, 활기를 띠었던 곳이기도 하다. 유동인구 10만명…시장의 뿌리 1904년 ‘을사조약’을 맺고 일제가 상권을 장악하려던 당시, 종로상인들이 경제침략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을 당시, 우마차가 다니던 시장통에는 장안의 유명기생들이 새로 나온 비단옷을 입고 뽐내기도 했던 곳이기도 하다. 고무신·양동이·치약 등 최첨단 생활용품이 첫선을 보인 것도 이곳이다. 현재는 주단포목(한복)·직물(양장지)·여성의류·침구류·주방용품·농수산물 등 60여 품목이 있으며, 1만3천평 규모에 점포수는 5,000여개. 상주인구 2만여명, 하루 유동인구가 여전히 5만~10만명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 2층짜리 건물에는 주단·직물·숙녀의류 등이 대단위 상권을 이루고 있으며, 새벽에 열리는 700여개의 숙녀의류 코너는 해외수출시장의 원조로서 자리잡고 있다. 건어물 전문인 중부시장을 비롯, 가락시장·노량진시장도 그 뿌리를 찾으면 물론, 광장시장이다. 과거의 옛영화를 찾아서 그런 광장시장이 최근들어 약간 의기 소침해졌다. 고급스러운 원단으로 디자이너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곳이 IMF한파를 맞으면서 침체의 늪에 빠지기 시작했던 것. 약간 고급스러운 원단보다는 기획상품으로 밀고 나오는 동대문의 기동력에 한마디로, 눌려버린 것이다. 고급스러움 보다는 기발하고 발빠른 인스턴트 소재에 인기가 모여진다는 것은 분명 불합리하고 억울한 일이 였으며, 과거의 옛영화를 찾기 위한 새로운 마음가짐도 다졌다. 지금 광장시장은 다시 왁자지껄한 흥겨움이 넘쳐흐르고 있다. 지난 5일부터 ‘광장시장 100년’ 행사는 사람들의 새로운 힘을 한데 모으고 있다. 최근 광장시장은 시장브랜드 ‘토리존’(Tori Zoon)을 만들고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태조 왕건’의 옷감도 우리 시장에서 떠갔다”며 자랑하는 사람들, 팔순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 처럼 언제나 남보다 빨리 문을 연다는 늙은 아들, 이정재의 무용담이 남아있고 땀방울 하나로 ‘갑부의 신화’를 만들어낸 곳. 광장시장 100주년의 행사는 서민들의 작은 행복과 한숨을 품속에 안은 채 강인한 생명력으로, 또 수백년을 살아갈것이라는 또다른 다짐임이 틀림없다. /유수연 기자 yuka316@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