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대문시장, ‘거상’ 의미 바뀐다디자인·제품·마케팅력 탁월한 ‘패션벤처인’ 부각
2003-01-09 KTnews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진다. 하지만 상인들의 24시간은 시작과 끝이 일반인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남·동대문시장 도매 상인들의 아침은 오후 6시.
매장은 밤 8시가 넘어야 비로소 하루 장사를 준비하는 분주함이 느껴진다.
새벽 3시경 약간의 여유를 만끽하는 상인들은 일반인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원단과 샘플 기획을 준비한 뒤 오후 1-2시경이 돼서야 하루가 마감이 된다. 하지만 치열한 삶의 현장 뒤에는 ‘성공’과 ‘실패’의 양면성이 존재하는 법. 또 성공과 실패의 차이가 ‘백지장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끝없이 외줄타기를 하는 상인들의 삶은 결코 화려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상인들의 이러한 고단한 삶이 이뤄내는 결과물은 그 어떤 것보다도 대단한 것이다.
4만여 점포와 2만여 생산시설이 개미군단처럼 집적해 있는 이곳 남·동대문시장에는 바로 상인들에 의해 일일 400억원의 거래와 연간 20억불 수출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본지는 남·동대문시장의 ‘앞서가는 상인’들을 재조명함으로써 향후 재래시장의 미래를 예측해 보고자 한다.
남·동대문 시장 ‘거상’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 거상이라함은 일명 ‘돈 많이 번 사람’이었다면 요즘은 ‘시장 분위기를 리더하는 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또 과거에는 시장에서의 오랜 경험이 거상이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었다면 요즘의 거상의 첫 번째 조건은 디자인력, 제품력, 마케팅력이다.
옛 거상들은 “죽기 살기로 이 일에만 매달렸다”고 말하는 반면 신세대 거상들은 공통적으로 “남들과 좀더 다르게, 특이하게, 실용성있게”를 외친다.
물론 언론을 통해 전국적으로 잘 알려진 업체들도 아니며 돈을 많이 벌어들인 업체 역시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부자다.
자신만의 개성을 제품에 그려넣을수 있고, 이 일을 사랑하며 내 제품만을 고집하는 사람이 많은데다가 앞으로 자신의 브랜드를 운영하는 꿈을 꾸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 회사에서 근무할때는 하지 못했던 나만의 디자인을 표현할수 있는 행복을 일반인은 느끼지 못할 겁니다.”
이들은 비메이커 의류 특유의 자유분방함과 실험성을 표현할수 있기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또 이들 제품은 ‘트렌드’를 주도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내 디자인을 카피해 더 싸게 판매하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내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 같아 한편으로는 뿌듯함도 느낍니다.”
이들을 찾는 고객들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공통점이다.
지방 소매상인들로부터 해외 바이어까지 이들 제품에 매료된 매니아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마케팅면에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범위를 소매상인 몇 명에 안주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에게도 서로 다른 점이 있다.
브랜드에서 디자인을 해왔던 경험자도 있고, 학교에서 전공만 했던 사람도 있으며, 우연히 시장에 들어와 푹 빠져버린 사람도 있다.
또 시장에서 생활한지 1년도 채 안된 사람이 있는가 하면 10년 이상 시장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온 사람도 있다.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제품개발과 디자인, 그리고 공격적 영업도 마다하지 않는 각기 다른 사람들이 바로 남·동대문시장 미래의 존재가치이기 때문이다.
이들 속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탄생하고 이들속에서 제품 경쟁력이 나오며 이들속에서 브랜드가 생겨난다.
그러기에 이들을 부르는데 있어‘거상’이라는 말보다는 ‘패션벤처인’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저는 비즈니스맨이기 이전에 디자이너입니다.”
미국 라스베가스 매직쇼에 나가 즉석에서 150만불 계약을 체결해 화제를 모았던 두타 가닛 매장의 이진윤 사장의 말이 남·동대문시장 미래의 모습이길 기대한다.
/하태욱 기자 hana@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