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어드바이스] 패션업계의 실속없는 게임…유수연기자
1999-12-19 한국섬유신문
불과 1년만에 세상이 크게 바뀌었다.
듣도 보지도 못했던 IMF라는 단어와 혁명적인 정권교
체가 맞물리면서 과거 40년 가까이 고착돼온 체제와 이
념, 관습이 「글로벌 스텐다드」라는 새로운 질서에 끝
없이 용해되어 가는 엄청난 과정도 우리는 똑똑히 목격
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분야에 변혁이 일었으며, 부
동산이외에 평가지표를 갖고 있지 않은 은행들이 퇴출
과 합병등의 충격으로 뇌사상태에 빠져버렸는가 하면,
체제의 판도가 뒤바뀌어 이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
던 재벌의 해체과정까지 목하 진행중이다.
따라서 지금 부작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재
벌과 금융기관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신화가 사라
지고, 미국과 IMF는 현재 한국을 경제위기 극복의 성
공모델로 거론할만큼 상황은 급반전되어 가고 있다.
그리하여 실로 극한 상황에 내몰리면, 드라마틱한 타협
의 장면을 연출해 낸다는 소위 「막판 뒤집기」에 강한
한국인의 저력을 다시 한번 대내외에 과시해 보이고 있
는 것이다.
여전한 개혁 무풍지대
지난 1년은 패션업계에 있어서도 최악이였다.
흥청망청 잘 나갈 때는 몰랐는데, 위기의식이 팽배해지
자 당장에 깡통소리를 내며 쓰러져가는 업체들이 속출
했으며, 효율과 실속보다는 겉치레와 명분유지가 더 중
요했던 사람들은 제 손발을 잘라가며 남들이 먼저 죽어
가기만을 빌고 또 빌었다.
머천다이징 능력은 없고, 생색은 생색대로 내면서 리스
크는 모조리 입점업체의 부담이라는 무책임한 소매업자
들은 여전히 무풍지대에 있고, 회계연도말쯤 되면, 브랜
드업체들은 의례히 고액의 세금에 두들겨 맞지 않기 위
해 「실은 정말 속빈 강정」이라며 징징거리며 매달려
야 하는 현실도 여전히 남아있다.
말그대로 죽는 소리와 앓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
왔지만, 개혁의 효과라는 것보다는 이런 수많은 악조건
과 나쁜 관행과도 잘 타협해 가면서, 요리조리 잘 빠져
나가는 사람들에 관심이 더 집중했던 한해.
때때로 입에서 말하는 윤리와 내면 속의 윤리가 달라
도, 「돈을 번다」라는 차원에서 별반 아무 의식없이
흐름을 잘 타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는「세상은 다 그런
것」이라는 체념을 강요하기도 했다.
기본과 원칙을 생각해야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는 사람이
많은데, 배는 언제나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기분
이 들때가 많다.
변화가 많은 세상에서 현실을 냉정히 인정하고, 낡은
상관습에 휘둘리지 않은채 뉴 글로벌 스텐다드에 당당
히 앞장서는 작업은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치기」와
같은 무모함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계혁의 단계에서 탁상공론으로 좌절하든지,
어정쩡한 상태 그대로 밀어붙이려는 다소 기형적인 의
도에 너그러워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경제정세와 외국자본이 극심히 움직이는
이 어려움속에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바도 많지만, 문제
의 가장 심플한 해결은 언제나 기본을 숙지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이것은 패션비지니스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 한국
의 비지니스 전체적인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만, 언제
나 포인트는 가장 중요한 컨셉을 외면한 채 개혁을 바
라고 부르짓는다는 것이 무리라는 말이다.
돈줄이 관심 갖는 조건.
떠주는 밥을 먹으면서 반찬타령하는 것 만큼 얄미운 일
도 없다.
뒷짐지고 비난을 하면서 「알아 모셔주기를 바라는
일」이나, 「손도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다」는 황당한
발상이 아직 이업계에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개혁 1년이 지난 지금, 무풍지대는 없다.
적당하게 이리저리 시류를 넘나들던 행운도 확율도 점
차 희박해지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 세계에는 갈곳 없는 자본이
보다 돈이 될만한 아이디어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고 있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앞으로의 비지니스의 향방은 외국 자본쪽에서 참가하고
싶은 프로젝트를 세울 수 있는가 없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
그를 위해서는 프로젝트의 기본은 컨셉을 알기 쉽고,
자신이 있는 목소리로 강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에
있으며 디지탈을 구사하고 설득력이 있는 비쥬얼을 준
비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겠다는 의지에 있다는
것.
「힘들어 죽겠다는데, 꿈같은 소리한다」며 비아냥 거
리는 사람이 있다면, 문제는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러나 적당히 시작해서, 책임 회피를 위한 예방선을
치고 코스트를 될 수 있는대로 줄인다는 리스크방지형
개혁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에게, 「애매함이 용서받지
못한다」는 글로벌 시대의 냉혹함은 두렵기 조차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소비자들에게 부담시켜 온 코스트
는 모두 되돌려 줘야한다는 정도의 새로운 각오로 또다
른 1년을 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