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년동안 가르쳐 봤지만…조능식
1999-12-12 한국섬유신문
▼요즘 TV에 방영되는 「공공사회계몽」용으로 마련
된 필름 하나가 눈길을 끌고 있다.
내용은 60대 초반의 할머니의 잔잔한 음성과 더불어 순
화된 표정으로 타이르듯 속삭이듯 흘러나오는 자신의
신상발언이 거부감없이 가슴 깊이 다가 온다.
“저는 49년동안 평교사로 지내면서 아이들을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공부보다는 더 중요한 일들을 강조해
왔습니다. 친구끼리 싸우지 마라, 욕심내지 마라, 거짓
말 하지 마라, 남을 먼저 생각하고 남에게 양보할줄 알
아라-. 이것은 인간의 기본이어서 제2의 건국도 여기서
부터라고 생각됩니다.”
-지극히 평범한듯 싶지만 영원한 진리임에 틀림없는
기본적 교훈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속담이 있다.
그래서 「가정교육」을 우리들은 중요시했었다. “그
사람 집안은 어떤가?”하고-.
그러나 이제 집안을 따지고 나선다는 얘기는 넌센스가
돼 버린 세상만 같다.
그저 돈만 있으면 제일인지 알고 찢고 까불던 때가 있
었다. 허다 못해 어린녀석이 “우리 집 아파트는 60평
인데 네 집은 몇평이냐?고 엄마 아빠를 본따서 철모르
고 자랑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몰지각한 사람들에게 IMF가 일깨워준 일들은 많았지
만 아직도 우리에게는 <모자람>이 너 나할 것없이 너
무도 많다.
그 할머니 초등학교 평교사는 49년 동안을 그렇게 가르
쳐 왔는데도 아이들은 크면서 그 일을 까맣게 잃어버린
다고 한탄도 했다.
-따지면 그런 일들뿐 아니라 평소에 몸에 지녀야할 간
단한(?) 일들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
이를테면 혼잡한 <전철>같은 곳에서 남의 발등을 밟고
도 태연(?)한 사람이 허다하다. 이때 “미안합니다”라
는 한마디면 되는 것을 그 <미안하다>는 말이 어찌나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남에게서 받은 사소한 친절에 “고맙습니다”라는 한마
디가 그렇게 정겨울 수 없는데도 그 고맙다는 말을 할
줄 모른다.
「미안하다」「고맙다」는 이 말들은 외국사람들 입에
선 으례히 첫머리에 붙어 나오는 예사로운 말씨의 하나
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틀림없이 49년 동안 가르쳐 온 그
평교사님 말맞다나 시민의식의 기본이나 일상적 감성이
남의 나라에 비해 그만큼(49년이상?) 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버스를 타고 있는데 한 정류장에서 그리 건강
이 안좋아 보이는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오르면서 운
전기사에게 “고마워요”라는 간단한 말 한마디가 그렇
게 정겹게 들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