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어드바이스] 우리는 뉴욕으로 간다…유수연

1999-03-03     한국섬유신문
패션산업의 화려한 허구 패션을 공부한다는 학생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그들에게 있 어 디자이너라는 존재는 꿈이고 환상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패션의 타분야에는 지원이 없는데, 유독 디자이너의 과정에 는 학생들의 넘쳐흐르고, 막판에는 취업난에 허덕여야 한다 는 현실은 패션산업이 갖고있는 화려한 허구를 가장 극명하 게 시사해주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답고 우아하다고만 생각하는 스타의 세계 에 발을 딛는 순간, 꿈이 현실로 바뀌는 혹독함을 맛봐야 한 다. 호화로운 유럽의 사교계의 어느 한 장면을 공상하며 나른하 게 잡지책만을 뒤적이며 시간을 보내왔던 사람들이라면 냉혹 한 비지니스와의 접목이라는 부분에서 당황하게 될 것은 오 히려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네 인식의 미숙함을 지적하기 이전에, 패 션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에도 뭔가 크게 잘못되어 있음을 신 날하게 반성해야 하는 부분일 것으로 믿고 있다. 세계 패션의 구도변화 패션산업을 비지니스가 아닌 꿈으로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실수이다. 패션이 경제가 침체할 수록 사치산업의 원흉으로 내몰리고, 스스로 피해의식의 늪속에 빠져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도 여기 에서 기인한다. 지금 아시아 패션시장의 패권은 일본과 중국이 할거하고 있 다. 막강한 자금력과 디자이너의 감성, 그리고 치밀한 유통망을 바탕으로한 세계적 네트워크로 시장을 확대해 나가고 있는 일본은 그렇다 치고, 중국마저 타고난 순발력과 투자센스등 으로 지오다노, TSE, 안나스이 등 자국브랜드의 기반을 다져 나가고 있는 것은 물론, 중국화 된 홍콩 조이스를 통해 들어 오는 프라다와 DKNY등 일류브랜드의 집중투하정책을 취하 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알 수 없는 거대한 와 같은 두려움 을 준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투자가 제대로 되지 못한채, 매장 어느구석에 박혀있는지 알 지도 못하는 사이에 줄줄이 부도라는 선고를 맞고 있는 이시 점에서 돌파구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가. 모든것이 다급해진 이순간에 패션이 이미지고 꿈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시작된 러시안 룰렛게임 IMF란 결과적으로 모든 시장을 열고 공평하게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머니 판돈과 목숨을 몽땅 내건 러시안 룰렛게임의 신호탄 이 울린것 뿐이라는 한 업계의 대표의 말은 자극적이다. 그리고 어차피 패션도 이젠 이미지와 명성만으로 물건을 팔 려고 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정당한 기준하에 공정하게 경쟁 할 수 있는 「실력」과 「운」 두가지를 겸비하고 해외로 나 갈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내몰린 것이다. 이미 주위에는 식견과 정보로 무장한 영국패션, 예술과 색채 감각을 패션과의 접목하는 프랑스, 독일의 장인정신, 식민 전 략을 풀로 이용한 영국의 식견과 정보력, 실용과 막강한 소 프트웨어로 밀어붙이는 이태리. 로마군단처럼 자금과 네트워 크로 잡아가는 일본...그와중에 대국인 특유의 뚝심을 축적해 가는 중국이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는 패션이란 기껏해야 「끼」를 가지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만 하고 있다면, 여간 갑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시장개척 선봉에 선 디자이너 다행히도 요즘 디자이너 업계에서 해외시장개척을 위한 새로 운 움직임이 일고 있다. 국내 SFAA그룹 디자이너 5인이 뉴욕컬렉션에 참가, 해외시 장의 포문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컬렉션」이라는 테마하에 서울發패션을 뉴욕시장에서 당당히 선보이고 세계적인 바이어들에게 그 실력을 평가를 받겠으며 반드시 비지니스로 연계시키겠다는 의지에서 어려 운 현실속에 결코 움추러들지 않고, 누구보다 선봉에 서는 톱디자이너의 자존심이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과 현대의 적절한 조화로 독특한 장르를 제안하 는 설윤형씨, 미국인이 좋아하는 실크소재의 연금술사 한혜 자씨, 블랙과 화이트의 모던 꾸뛰르로 뉴욕인의 패션감각에 근접하게 될 박윤수씨등 국내 톱디자이너들의 작품이 향후 세계시장에서 어떤 반응을 몰고 올지 기대도 그만큼 크다. 사실 여기에서 70년대 후반,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와 대기업 들이 상호 협조체제로 유럽과 미주시장을 가볍게 공략했던것 을 생각하면, 우리 디자이너들의 진출모습이 어쩐지 약간은 외롭기는 하다.. 그러나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주고, 제살을 깎아먹듯이 무모 하게 경쟁해왔던 시기를 벗어나, 어려운 시기에 과감히 해외 시장의 문을 여고 나서는 몇몇 디자이너들의 개척정신에서 침체된 국내패션이 새로운 자극과 활력을 받고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