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주년 특집] 신발산업(1)
고무신의 신화…“다시한번 재현”釜山, 신발산업 재도약 다짐·지식 집약산업으로 탈바꿈OEM생산
2004-07-31 김경숙
『부산 신발산업은 노동력을 무기로 한국경제태동기 버팀목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내며 세계 운동화 수출 1위 국으로서 위상을 떨쳤다. 그러나 8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생산기지의 해외이전으로 부산 신발산업은 생산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해외시장의 추격으로 수출은 급감, 과거의 위상을 잃고있다.
세계시장은 급변했고, 안일하게 대처했던 우리를 호락호락하게 기다려 주지 않았다.
이에, 부산 신발업계는 구조조정의 시기를 거치며 재도약을 위한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있다. 산자부와 부산시는 신발 산업을 특화사업으로 지정, 약 4000억 원의 자금을 투입한 4개년도 계획을 올해로 마무리짓고, 포스트 프로젝트 추진을 거론하고 있다.
혹자는 이러한 정부의 움직임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밖에 되지 않는 전시행정의 액션에 불과하다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주사위는 던져졌다.
부산신발에 대해 냉철하게 다시 짚어봄으로써 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야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패자부활전에 도전한 부산 신발업계가 새로운 강자로 등극할 수 있기를 바라며 현 신발 산업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 신발 산업의 변천
부산 신발산업의 태동은 1920년 최초의 고무신 제조회사 ‘대륙고무공업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일한 신발이었던 고무신은 번창의 가도를 달리며 성장, 국제, 동양, 삼화, 진양, 태화의 빅5 구도를 구축했다.
1962년 11만9천 달러의 대미수출을 시작으로 해외시장에 첫발을 내딛은 한국 신발산업은 6년만인 68년에는 1,100만 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는 도입기를 지나, 70년대 신발 자본의 신흥 재벌 그룹을 형성하며 70% 수출 신장률로 비약적 발전을 거듭한다.
그후 80년대 중반까지 미국의 보호무역 장벽과 석유파동으로 잠시 정체기를 맞이하지만 지속적인 신장세를 이어간다.
80년대 중반 이후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일어난 노동분쟁으로 임금이 상승, 대규모 생산라인의 해외이전이 진행되면서 제3국과의 경쟁은 더욱 심화돼, 80년대 후반 운동화 수출 세계1위를 정점으로 감소 국면으로 돌아섰다.
그리고 현재, 매년 30% 정도의 수출액 감소 추이를 보이며 수입이 수출을 넘어섰다.
▨ 벗어날 수 없는 노동집약의 틀
1995년 기준, 평균 제조업 인건비 비중이 12.7% 인데 반해 신발산업은 약 1.5배인 19.5% 달하며, 혁제 운동화 제조 시 250개∼340개의 세부공정에 최대 300여명의 손을 거쳐야 생산된다고 하니 지극히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닐 수 없다.
자동화를 통해 일부 생산공정을 줄일 수 있다고는 하지만 2차원의 재료를 3차원으로 바꿔야 하고 규격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신발산업에서 인력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따라서 신발 산업은 저임금의 노동력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되어있다.
70년대 초 나이키가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한국을 선택해 일본에서 한국으로 생산기지가 이동했듯이, 한국의 노동시장이 고급화된 이상, 해외 빅 바이어들이 중국, 베트남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이다.
신발대량생산이라는 거대한 조류가 이태리를 지나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와 중국, 베트남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그 흐름의 중심에서 세계를 리드했었고 제3국으로 무게가 실려가고 있는 지금, 단순한 경유지가 아닌, 물살이 휩쓸고 간 뒤의 남은 진주를 발견해 보석으로 만드는 일을 해야한다.
▨ OEM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
OEM은 생산단가를 낮추려는 브랜드 기업과 브랜드 기업의 인지도를 활용하여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려는 하청기업간의 이해 관계가 맞아떨어질 경우 언제라도 성립할 수 있는 생산 방식이다.
저개발국 기업 입장에서는 기술과 자본의 자립도가 취약한 시기에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매출을 증대시켜 부가가치를 획득하는 수단인 동시에 제조 국에게는 고용 창출과 외화 획득의 기회일 뿐만 아니라 생산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부산 또한 저렴한 인건비를 내세워 OEM 방식으로 선진 기술을 빠르게 흡수하며 우리의 뛰어난 지적 감각과 근면성으로 그들이 원하는 신제품을 언제든지 척척 소화해냈다.
주문자들이 어떤 구체적인 기술들을 전수해주는 방식이 아닌, 우리의 역량으로 기술들을 학습해왔다.
아쉬운 점은 그러한 OEM 개발을 통해 우리가 신제품 구현자로서의 역할에만 머물렀을 뿐, 개발의 원천자가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한 예로 나이키 생산자들도 제품의 품번만 꿰고 있을 뿐 그 제품이 트렌드와 어떻게 맞물려 가는지, 어떤 의도에서 기획되었는지의 의미에 대해선 전혀 모른다는 우스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