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2주년 특집] 전문가 견해-신발산업

2004-07-31     한국섬유신문
트렉스타: 이상도 사장 -앞선 경영 마인드가 성패 좌우 -부단한 연구개발…세계흐름에 적극 대응 그동안 부산 신발업계는 단순한 돈벌기에만 급급했었다. OEM 생산에 젖어, 그 다음 단계를 위해 우리가 갖추어야할 요소들에 대해 경시했던 것이다. 지금도, 과거에 집착한 일부 신발관계자들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없었기에, 신발산업을 노동집약적 특성으로 인한 사양산업이라는 철없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정확한 색깔을 찾아낸다면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고부가가치의 사업이다. 개채 당 효율을 비교한다면 자동차보다 더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 할 수도 있다. 고부가가치 창출을 위해서는 경영자의 앞선 마인드가 발판이 되어야 한다. 최고 경영자의 실력이 브랜드의 가치를 대변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만불 시대를 달리고 있는 지금, 현재의 상황에 걸맞는 경영기법을 구사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교육을 통한 부단한 자기 개발이 필요하다. 80년대에는 노동력 무기였고, 90년대는 언어가 그랬다. 그리고 지금은 감성이 이 시대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고무신으로 대표되던 신발에서 승마화, 사이클화, 등산화, 런닝화 등 수많은 카테고리가 생겨나고 있다. 그만큼 고객의 눈높이가 달라졌다. 과거 모든 초점이 노동력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욕구를 발산하고 있는 고객에게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고객이 원하는 욕구를 앞서갈 수 있는 감성의 개발, 그리고 자기만이 가질 수 있는 차별화의 구축. 그것이 핵심이다.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 현실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을 100% 충분히 활용해야한다. 완제품의 생산에만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 과거와 같은 노동성을 갖지 못하지만 우리에겐 테크닉이라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신발의 부품 개발이나 특허기술개발을 통한 지식 가치를 판매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신발 산업은 한평생을 배워도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분야이다. 쉽게 생각하면 쉽게 무너진다. 오랜시간 뒤에 투자한 만큼의 합당한 결과가 주어지는 것이다. 투자하지 않는 가치는 일어날 수 없다는 진리를 생각해야 될때다. ▨ 르까프: 나은택 상무이사 -“유통시장을 사수하라” -고객 최우선의 시각…시대에 적극 대응 화승은 신발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다. 신발의 태동기인 53년 동양고무공업 설립에서부터 70∼80년대의 호황기를 지나, 2003년 지금까지 반세기의 시간을 이어왔다. 한국 경제발전의 밑바탕이었던 신발산업의 선두주자로서 지금까지 그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건 시장의 흐름에 맞춘 변화와 개발 의지였다고 본다. OEM 수출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르까프’라는 자체상표를 개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일어섰다. 부산은 이제 생산기지로서의 명분을 이어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물론 소재분야나 특수화 생산 등 차별화 요소를 갖추었다면 한국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얼마를 이어갈 지는 불투명하다. 기업주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제품생산의 하자가 없다는 전제하에 보다 저렴한 곳에서 생산해 많은 이익을 남기고, 고객에게도 합리적인 가격을 안겨주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해외 빅 바이어가 한국을 떠나 중국, 베트남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불안한 시각으로 바라볼 이유도 없다. 우리는 또 다른 뭔가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있기 때문이다. OEM 생산으로 축적된 생산 노하우에 마케팅을 접목, 유통이라는 큰 시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생산이 아닌 유통분야에 새롭게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현재 국내 중소 브랜드의 경우, 조금 잘된다 싶은 곳에 모두 머리를 박고 제살 깍기 식의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오너는 국내 시장을 넘보고 있는 해외 브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확고한 경영철학을 가져야 한다. 소비자들은 국내 브랜드를 구매할 때 자신이 수혜자가 될 수 있음을 인식하고, 국내 브랜드들은 그들 소비자가 바라는 것들을 충분히 충족시키면서 상승관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신발지식산업협동조합: 김동근 이사장 -개성공단, 도약의 기회로 -각업계 의견 조율…실효방안 모색 지난달 30일 개성공단 착공식에 참석했었다. 아직도 그 날의 감동과 설렘이 가시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