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디자이너와 1시간] 이영희

파리컬렉션에서 NY한국박물관까지…전통패션 국제화 “이미지 아닌 현실로”“한국패션, 독창성과

2004-08-13     유수연
90년대 초. 당시의 생각으로는 정말 겁없이(?) 한복 몇점들고 파리 컬렉션에 뛰어들었던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요즘 뉴욕 한국박물관의 꿈의 실현을 위해 또다른 초지(初志)를 다지고 있다. 2000년말 대대적인 출범식과 함께, 하와이등지에서 후원금 모금에 나선 그는 이미 뉴욕 맨하탄에 건물 선정을 마치고 박물관과 우리문화의 다양한 전시와 공연, 각종 문화 강좌의 프로그램까지 마련하는등, 이사업에 아예 발벗고 나섰다. 항상 우리 전통 그자체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고 있는 그는 디자이너 활동을 하면서 탈춤이나 살풀이 춤, 가야금을 비롯한 전통악기연주법, 심지어는 김치를 담그는 법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의 가치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것을 절감했다는 것. 이를 위해 그는 우리의 전통을 아예 외국인의 몸에 익히게 하는 것이 지름길이라고 결심했다. 그는 자신의 이런 발상이 결코 국수주의적 감상이나 아무렇게나 기분나는대로 시작하고, 그러다 없애버리는 성급하고 조잡한 형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의미에서 그는 단연코 비즈니스적으로도 성공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장소도 파리가 아닌, 뉴욕을 선택했다. 그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소장품과 작품. 그리고 남은 열정을 다해서 이사업에 투신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패션디자이너 이영희. 그의 못말리는 전통사랑…뉴욕 한국 박물관설립으로 확대되고 있는 그의 꿈의 배경과 현실에 대해서 알아본다. ―93년 당시 파리 컬렉션에서 처음으로 한복의 라인과 고유의 혼이 깃든 새로운 스타일을 간결하고 소박하게 현대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보이셨을 당시가 정말 새롭습니다. 요즘은 전통의 세계화를 위해 또다른 활동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가 한복을 만들기 시작한지 30년이 다 됐어요. 그리고 파리에 진출한 지도 10여년이 흘렀네요. 그래서 어떨 때는 참 걱정이 돼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 동안 특별히 제가 무슨 일을 했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그들에게 한복을 입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통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지름길이라는 생각으로 요즘은 미래문화재단의 뉴욕 한국박물관 설립에 동참할 수 있는 각계각층의 후원자를 모으는데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한복으로 국제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으로,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그렇죠. 그러나 30년이 넘게 한복을 만들면서 저에게는 신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부단히 ‘혼자 연구하다 보면 길이 보인다’는 생각이죠. 사실, 제가 처음 옷 만드는 법을 배울 때 선배들은 뭐든지 차차 알게 될 거라고만 말했죠. 누구든 세세하게 알려주지 않았어도, 열심히 하다 보니 조금씩 무언가 알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일이였지만, 용기를 갖고 끝없이 매진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스폰서가 있는 것도 아니였는데, 많은 예술가들과 기자들이 세계 어느 나라 옷보다 한복이 아름답다는 그말들이 마치 마약처럼 저를 파리로 파리로 가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파리컬렉션과 한복은 아무도 쉽게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인데 진출 당시 어떤 분위기였습니까? ▶그 때 파리는 동양풍이 막 각광을 받을 때였어요. 패션쇼에 소개된 모든 한복이 곱고 예쁜 것만은 아니었어요. 어떤 것은 회색 무명을 누빈 옷에 자주 댕기까지 덧붙였어요. 또 어떤 것은 승복을 응용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반응이 불안했죠. 저녁때가되자 TV여기저기에서의 채널마다 이영희의 옷이 나오고 있었어요. 우리는 자정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환호성을 터뜨리며 기뻐했죠. 애국자가 된 기분이더라구요. 자고 일어났더니, 프랑스 패션잡지 마담 피가로에 빨간 원색으로 큼지막하게 한복 사진이 나왔어요. 마치 꿈같았어요. ―사실 파리는 패션전문가들이 모인 곳이라서 웬만하지 않으면, 스포트라이트 받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사실 파리컬렉션기간동안에는 8, 90명의 디자이너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들어요. 장소는 각자 알아서 정하고 각각의 디자이너에 홍보 담당자가 붙어서 그 담당자가 세계 기자들을 불러들이죠. 기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