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窓]한기주 신드롬이 말하는 것
요즘 여자 셋, 아니 둘만 모여도 한기주 얘기라고 한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주인공 한기주는 시청율 50% 대의 원동력. 주말 방영이 끝남과 동시에 주요 인터넷 포털에는 한기주 어록, 한기주 패션, 한기주가 부른 노래 등 한기주와 관계된 것들로 도배가 된다.
한기주의 인기는 실로 메가톤 급이다. ‘마에스트로’의 상품 카다로그는 이미 동이 났고 드라마 방영 이후 ‘마에스트로’ 홈페이지는 평상시의 보다 4배 이상 많은 접속건수를 올리고 있을 정도. 브랜드측은 최근 올 추동 카다로그는 평소보다 3배의 물량으로 공급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성들은 왜 이렇게 한기주에 열광하는가. 한기주의 패션에서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한기주는 누군가 챙겨주는 대로 아무거나 입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어디에 무엇을 하러 가는 지 그래서 뭘 입는 것이 맞는지 잘 알고 있다.
실제 전신 거울 앞에서 출근 준비를 하는 한기주의 모습은 제 옷 하나 제대로 못 입어 어머니, 아내 등 여성의 도움으로 옷을 챙겨 입는 기존 드라마 속 남자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한기주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한기주 패션의 포인트는 뭐니뭐니 해도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수트에 나비처럼 내려앉은 일명 ‘광폭 넥타이’와 치프 스카프다. 대충 양복 한 벌이 아니라 세심하게 고른 액세서리로 자신을 가꿀 줄 안다.
한기주 패션은 브라운관 밖의 패션 업계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최근 남성 액세서리 토틀샵이 속속 등장하고 있고 꽃무늬 셔츠의 폭발적인 인기가 남성복의 화려한 변신을 날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크리스찬 라크르와’의 05 S/S 컬렉션에는 스팽글, 비즈 등으로 장식한 화려한 셔츠들이 대거 선보여질 예정이다.
한기주가 현대판 마초든 세련된 가부장의 전형이든 간에 한기주 신드롬 안에서 우리 사회의 여성의 남성 취향이 분명 변하고 있으며 이와 함께 남성들이 트렌디 해 지고 있다는 발견을 해본다.
메트로 섹슈얼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지난 봄 우리 남성복 트렌드를 주도했던 문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그동안 지나치게 남성적인 남성에 의해 삐걱대던 우리 문화가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는 증거다.
여성 정치인이 국회에 많다고 해서 우리 사회가 양성 평등의 균형 잡히 사회로 한 발 진보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남성 패션의 변화 속에 읽혀지는 여성적 감수성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일보 진보를 본다.
그리고 바라건대 이제는 패션 업계가 주도적으로 우리 사회의 균형을 위한 문화를 만들어 갈 때란 걸 알아야한다. 남성의 지갑을 여는 방법은 의외로 쉬울지도 모른다.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진 옷과 액세서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문화를 만든다는 소임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면 글쎄, 우리 남성 소비자들은 이제 살 준비 돼 있다.
그러니 힘내자. 남성복 시장은 아직 파지 않은 유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