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on Best 100 [아쿠어스큐텀]
150년 전통의 영국 신사복 정번코트 대명사
군인용 트렌치 코트서 황실 정치인·헐리웃·영화계로 발전
방수기능 상징 로고와 라그란 소매…여성복 진출로 점차 확대
1952년 영화 카사블랑카. 소프트 모자를 쓴 햄프리 보거트가 입고 있던 트렌치 코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부와 권위와 명예를 상징해왔던 영국의 아쿠어스큐텀의 전설을 함께 기억할 것이다.
바바리와 나란히 영국의 2대 코트 브랜드로서 대처, 메이저등 영국 수상 닉슨 미국 대통령이외에 영국이나 유럽황실과 헐리웃 영화계를 주름잡은 것은 물론, 1953년 저 에베레스트 등반에 성공한 에드몬드 힐러리의 윈콜 D711등산복의 기능성으로도 유명해진 브랜드.
지금도 레인코트로 사용되고 있는 이소재는 창업자인 존 에머리의 울地의 발명품으로, 당시 일반적이였던 고무줄 레인코트의 불편함과 불쾌한 냄새를 없앤 것이 결정적인 인기의 비결이었다.
아쿠어스큐텀사는 이 방수지 코트를 1864년∼56년 크리미아 전쟁에 참여한 영국 군병사에게 제공하면서 비바람을 막는데 확실한 그 기능성을 인정받았다.
아쿠어스큐텀의 이름은 군인들의 용감한 행군과 함께, 전장의 많은 무용담으로 전해지고, 코트의 존재로서 일반인들의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했다.
이런 아쿠어스큐텀의 전성기는 이 전쟁에서 경기병대의 사령관이였던 라그란경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기 쉬운 라그란 소매의 고안으로 절정기를 맞았다.
1890년 현재 본사가 있는 리젠트 백번지로 이전하여 1895년 라틴어로 물을 의미하는 ‘아쿠어’와 방패를 의미하는 ‘스큐텀’을 매치시킨 아쿠어스큐텀(방수)으로 정식으로 트렌드 마크로 바꾸었다.
같은해, 이브랜드는 그랜트 오브 암스로 상징하는 방패와 물을 조화시킨 문장도 정식으로 채용되어 여성복시장에도 뛰어들었다.
1897년에는 에드워드 7세에게 최초의 로얄 워런트 칙허장을 수여하기에 이른다. 에드워드 7세의 눈에 띄어 왕이 애용하는 코트와 망토로서 자리를 잡고, 왕이 빈번하게 유럽각지를 돌아다니게 되자, 전유럽의 왕가들이 아쿠어스큐텀의 고객이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유명한 트렌치 코트가 처음으로 주목을 모은 것은 1914년∼18년의 제1차 세계대전의 일.
이때는 아쿠어스큐텀의 방수 울로 만든 장교용 코트가 대활약을 한다.
트렌치 중에서 전쟁중의 병사를 단순한 추위만이 아닌 물과 흙으로부터 보호하고 트렌치 코트라고 하는 호칭을 전세계에 알리기 위해 그 명성은 전후의 붐으로 계속 이어진 것이다.
이결과 트렌치 코트는 기능성뿐만이 아니라, 패션성도 높게 평가받게 되었다.
남성용으로는, 당초 상당히 구석구석까지 디테일하게 정성을 들인 기능적인 군인용 트렌치 와 견장과 탭을 생략한 경쾌한 일반 시민용 트렌치등을 만들었던 시대였다.
현재는 거의 군인용에 가까운 디자인을 채용한 두터운 원단에 코튼지 등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착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