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窓]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용기
2006-05-16 정선효
어느 날 한 숙녀가 베토벤에게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보러 가자고 청했다.
"싫소."
그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유인 즉, 다른 사람의 음악은 절대 듣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독창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베토벤의 일화 중 한 토막이다.
카피가 만연한 제화업계의 현실과 견주어 보면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한 업체에서 출시한 구두가 '히트'를 치고이틀 후면 여기저기서 똑같은 구두를 볼 수 있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서로 타 회사에서 디자인을 베꼈다고 아우성이다. 서로 디자인의 '원조'라고 볼멘소리뿐이다. 한순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한낱 '장사'에 지나지 않는다.
브랜드 라벨만 떼면 어느 브랜드인지 알 수 없다. 예전처럼 구두는 장인들의 손이 우선시되어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젠 신기 위한 구두보다는 트렌드한 패션을 추구하는 아이템이다. 우수한 MD나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데 열을 올리지만 정작 그들의 역할을 의심해 본다.
브랜드를 명품화한다고 선언하면서, 명품브랜드의 디자인만 카피해 '적시적소'에 공급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
몇 십년 전, '금강제화', '에스콰이어' 등은 구두명품으로 명성을 날렸다. 글로벌 브랜드가 낯설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은 고급살롱화로 기업을 일군 브랜드가 해외명품브랜드에게 밀려나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로고만 봐도 구두하나로 세계를 정복한 명품브랜드들이 '왕' 대접을 받으며 국내 시장을 잠식했다. 그것도 모자라 명품관들이 속속 개점하고 있다. 국내 제화업체들은 '찬밥'신세가 되어 '음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수익성은 떨어지고, 업체 경영이 악화돼 브랜드 존립과 정체성은 줄어들거나 사라지는 위기에 처했다.
지금은 유통업체와 제화업계간의 각축전이 무엇보다 치열한 때다. 업체들이 차별화 전략을 강구하기 전에 유통사들이 먼저 차별화를 내세웠다. 물론 해외브랜드만을 선호하는 백화점도 너무하다 싶다.
하지만 남 탓하기 전에 '내 것'을 만들어 보자. 고객의 만족도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자사만의 완성도 높은 구두를 만들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이제 곧 가을겨울 시즌을 위한 디자인을 개발 할 때다. 타사가 어떤 신제품을 출시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말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