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유의 날 悔恨
2000-11-04 한국섬유신문
앞으로 일주일후면 4백만 섬유·패션인의 축제일 섬유
의 날이다. 87년 이후 매년 섬유의 날은 찾아오건만 최
근 몇 년간 이 날을 맞는 느낌은 솔직히 興보다 아쉬움
과 안타까움이 더 많은 날로 기억된다.
올 섬유의 날을 맞는 감흥 역시 지난 몇 년간 섬유의
날 못지 않다. 기쁘고 즐거워야 할 축제의 날을 앞두고
空虛한 마음으로 맞아야 하는 국내 섬유·패션업계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섬유·패션업계 또한 아쉬움·안타까움에 대한 항
변 역시 만만찮을 것으로 생각된다. 내부든 외부든 섬
유·패션업계를 짓누르는 압박감은 갈수록 커지고 그만
큼 헤쳐나갈 난관도 많아지고 있다.
또 갈수록 거세지는 선진국들의 규제 그리고 우리를 위
협하는 후발 섬유생산국들 또 국내업체간 제살깍기식
경쟁 등 어느 것 하나 마음놓을 입장도 아니다. 그러나
單刀直入的으로 이는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어정쩡한 기술과 품질 그리고 팔기만 하면 된다는 주먹
구구식 마케팅은 어떤 말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것이
다. 오늘 국내 섬유·패션산업 自畵像은 87년 100억불
수출을 달성한 그날과 별반 차이가 없다.
혹자는 오히려 “오늘 섬유·패션산 업의 실상은 그 날
에 비해 볼륨만 다소 크졌을 뿐 모든 여건과 상황은 되
레 악화됐다”고 말한다. 국내 섬유·패션산업의 현주
소는 사실상 이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된다.
돌이켜 보자. 지난 87년 11월11일 섬유·패션업계는 섬
유류가 단일품목으로 국내산업계 최초 수출 100억불을
돌파하자 意氣揚揚하게 이 날을 섬유의 날로 정했다.
섬유의 날 제정의의도 섬유인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섬
유산업을 성장산업으로 발전해 나가자는 웅대한 뜻을
담았다.
이날 섬유·패션인의 의기투합된 결론에 모든 경제인들
도 쌍수를 들어 환영을 표했고 섬유·패션산업의 전도
를 축하했다.
더욱 90년대 중반 대망의 200억불 수출을 달성하는 화
려한 청사진도 기대했다.
그러나 섬유·패션업계의 청사진은 지금 한갓 신기루로
남아 있다. 12개 星霜을 보내고 올해 또 섬유의 날을
맞건만 그 날의 의의는 어디서든 찾을 수가 없다.
200억불 돌파는 요원한 체 수출은 아예 뒷걸음질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네의 당당한 실력인 줄 알았건만 이
는 아니었다.
88년 이후 수년간 고도성장을 거듭하던 섬유류 수출은
90년대 중반 한풀 꺾이는가 싶더니 이제는 기력을 소진
한 듯 비실비실 그 자체다.
100억불 수출돌파에 견인차 역할을 했던 국내 간판급
섬유업체들이 부도·도산으로 수도 없이 中途下車했다.
불과 5∼6년전 일이다.
禍를 부른 사업다각화의 미명은 결국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무시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는 지금도 도미노 현상처럼 번지고 있다. 원인이야
수도 없겠으나 한마디로 집약하면 팽배한 我田引水격
坐井觀天식 사고이다.
80년대 후반 제품업체들의 해외생산 붐은 이의 신호탄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남미·동남아시아를 겨냥한 무지막지한 해외생산 경
쟁은 터무니없는 국내업체간 가격경쟁을 자초했고 바이
어들의 오더만 이탈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 무분별한 해외생산은 국내생산 공동화로 이어졌고
현지문화를 도외시한 노사정책은 현지인과의 마찰만 야
기하는 등 과실의 열매도 따기 전 막대한 생산설비와
노하우만 남기는 자충수가 됐다.
90년대 초반 홍콩특수로 점화된 화섬직물 수출붐은 제
품수출 부진을 벗는 기회였다.
그러나 화섬직물 수출 역시 국내업체들은 뼈다귀 우려
내듯 안일한 대응으로 일관했다. 카피제품이 범람하고
전가의 寶刀마냥 가격후리기가 성행했다.
결과는 90년대 중반 대구산지를 중심으로 몰아친 부도
행렬이다. 100여 사를 웃도는 직물업체가 秋風落葉처럼
쓰러졌다.
또 상당수 직물업체가 외형보다 내실위주로 전환하는
계기도 됐다. 섬유수출 주력품목인 제품·화섬직물의
自畵像은 오늘 한국 섬유·패션산업을 나타내는 추한
몰골 그 자체다.
후진국을 겨냥한 수출은 한계가 극명했다. 문제는 잃었
던 것이 있다면 분명히 얻는 것도 있다. 시행착오를 反
面敎師하는 지혜가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금 섬유·
패션업계의 살아있는 교훈으로 숨쉬어야 한다. 바로
21C를 겨냥한 새로운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전
근대적인 생산방식은 지나간 12년의 교훈으로 족하다.
이같은 의미서 오는 11일 제13회 섬유의 날은 21C 한
국 섬유·패션산업 비전이 제시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의례적인 구호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실천이 수반되는
행사로 거듭나야 된다. 섬유·패션산업의 과제를 摘示
하자는 것이다.
단적으로 새 천년의 섬유·패션산업은 정부가 밀고 지
방자치단체가 끌고 섬유·패션인이 앞장서는 三位一體
의 구도가 형성돼야 한다. 섬유·패션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