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流, 중국이 보인다!
⑬ ‘원한’에는 ‘덕(德)’으로 대한다
2007-10-15 한국섬유신문
나 역시 주변국으로 온 이후 많은 사람들한테서 신세를 졌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이 은 혜는 꼭 갚지 않으면 안 됩니다.’라는 당부에는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면 나의 경우는 신세진다는 게 거의가 금전문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돈을 빌린’것이었다. 절대절명의 핀치에 돈을 빌리게 되어 그분한테선 후광(後光)이 비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돈의 대차(貸借)는 돈을 돌려주면 그것으로 끝이다. 금리(金利)를 지불할 경우나 이쪽의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선물을 선사하는 경우는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사례를 하면 일단락 짓게 된다.
하지만 주변국 사람들은 돈을 갚은 뒤에도 다시 ‘은혜’를 갚으라고 한다. 이 점만은 중국인으로서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중국에서는 은덕상겸(恩德相兼 : 은혜와 덕은 일체인 것이며 대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은혜를 입은 일은 항상 마음속에 새겨둔다. 하지만 은혜를 갚는다는 것은 꼭 그 당사자에게 응분의 일을 해서 갚는다는 뜻은 아니다. 은혜를 입은 만치의 덕을 쌓아 자신이 타인을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는 힘을 축적해 언젠가는 자신이 받았던 은혜와 똑같이 타인을 위해 진력한다. 바로 그것이 중국식의 ‘은혜를 갚는’ 방법인 것이다. 즉 중국식으로는 사회에 은혜를 돌고 돌게 해서 소로가 돕는 게 좋다라는 생각은 은혜를 베풀었던 쪽도 그렇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보은’따위는 기대하지도 않는다. ‘보은’을 하라고 종용을 받을 때마다 ‘이거 처음부터 보은을 기대하고 은혜를 베푼 것 아냐…?’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중국에서는 이덕보원(以德報怨 : 원한에는 덕으로 갚는다)라는 생각도 있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다면 관계는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될 것이다. 사람의 인연을 중요시하는 중국에서는 원한은 일단 집어삼키고 그를 상회(上回)하는 덕으로 갚으려고 노력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