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열 칼럼
위기는 곧 기회다
2008-02-03 전상열 기자
한국섬유산업이 달려온 길은 모든 것을 새롭게 쓰는 역사였다. 그렇지만 그 역사가 지금 족쇄로 작용하고 있음은 우리의 불행일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명하다. 양적팽창에만 고무돼 전후좌우를 살피지 않은 채 달려온 결과였고 재투자에 인색했기 때문이다.
족쇄의 분기점은 2000년이었다. 그해 섬유수출은 한국섬유산업 사상 최고치인 187억8282만8천 달러를 기록했고 무역수지는 139억9483만7천 달러에 달했다. IMF 환란 끝물의 선물은 이 같이 풍요로웠고 새천년 원년을 맞아 섬유산업은 화려한 비상을 기약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었다.
성장모멘템 재구축 시급
뫼가 높으면 골이 깊고 밝은 곳 주위의 그늘은 더욱 짙다고 했던가. 이를 반증하듯 2000년을 정점으로 섬유수출은 바로 곤두박질 상황으로 변했다.
2001년부터 시작된 섬유수출 수직하락세는 2006년 132억 달러 규모에 턱걸이 할 정도였다. 6년만에 수출규모가 30% 수준 줄어든 것이다.
1997년 11월에 터진 IMF 환란은 섬유산업에 있어서 큰 분수령이었다. 위기인 동시에 기회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위기를 기회로 살리지 못한데 있었다.
환율상승은 수출경쟁력을 높여줬지만 섬유업계는 그렇지가 못했다. 되레 업계에 만연된 제살깍기식 과당경쟁에 기름을 들이부은 격이었다. 환란의 반사이익을 무차별 가격전으로 소진한 것이다.
섬유업체 금고에 재화가 쌓이기는커녕 환란전보다 채산성은 더 악화됐다. 이렇다보니 설비투자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환율상승시 설비투자는 기업의 부담을 증폭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 역시 위기를 기회로 살리지 못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업계가 먼저 홀로서기 해야
다시말해 제값받고 수출했으면 충분한 이윤을 챙길 수 있었다. 또 마냥 환율이 상승한 것도 아니었다. 설비투자 못한 것을 환율상승 탓으로 돌리기에는 한마디로 설득력이 부족하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잠재돼 있었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산다’는 얄팍한 무한경쟁 논리였다. 잔꾀는 자신도 살지 못하고 결국 전체를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와중에 2006년 3월 섬유패션산업 구조혁신전략이 나왔다. 2016년 세계 섬유4강을 목표로 한 청사진이었다. 2005년 5월부터 10여개월에 걸쳐 한국섬유산업연합회를 중심으로 전 스트림에서 175명이 참여해 한국섬유패션산업의 과제와 진로를 제시한 것이다.
이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경세호 섬산련회장의 의욕이 담긴 산물이었다.
숲을보는 슬기로움을
문제는 281개 과제 추진을 위한 3조원에 가까운 재원확보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중 정부 지원금 1조 2379억8300만원은 혁신전략 추진을 위한 핵심동력원 그 자체가 됐다.
여기서 섬유특별법 제정론이 터져나왔다. 혁신전략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무장됐다. 섬유특별법제정은 과거에도 추진됐지만 그때마다 무산됐다. 그런데 또 섬유특별법제정론이 나온 것이다.
정부의 시각이 당연히 고울 리가 없다. 정부의 지원 역시 한계가 있겠지만 혁신전략 근본취지는 수용했다. 옛말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업계에 있는 것 아닌가.
당장 업계가 먼저 할 일이 있다. 홀로서기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7년부터 추진될 혁신전략에 맞춰 업계스스로 재원조달에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바로 섬산련이 앞장서야 하고 경회장은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반세기에 이르는 경회장의 외골 섬유의 길. 그가 항상 현명한 판단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왔듯 그 슬기로움을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