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와요. 부산항… 옛 영광 되찾는다
2010-03-02 한국섬유신문
정부차원 지원책 급선무
1994년 6월 당시 필자는 부산패션 관련 종사자들의 중지를 모아 창립한 부산패션진흥협 의회의 초대회장으로 추대되었었다. 당시 협의회의 공약사업인 부산패션디자인경진대회 대상에 부산시장상 신청을 위해 부산광역시 기업지원과를 방문했을때, 이해할 수 없는 부서별 표기판이 필자의 눈을 의심케 했다.
‘신발·섬유계’라는 섬유 즉 패션이 신발아래 깔려있는 상식으로 이해될 수 없는 행정체제가 이루어 졌을까? 하는 의구심을 품고 관련 언론인의 입장에서 심층 분석해 본결과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1980년 제5공화국 전두환정권이 지역중복투자 방지 차원에서 채택된 지역별 특화산업지정으로 대구를 섬유, 부산을 신발로 지정되면서부터 초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70년대 OEM 방식의 봉제산업의 활성화로 국내 총 수출액의 상당액을 감당하던 부산섬유산업은 특화산업지정으로 인해 신발 밑에 눌려있는 찬밥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다.
더 큰 문제는 3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신발섬유계’ 체제로 이어오며 정부차원의 지원책은 전무한 현실에 처해 있는 점이다.
현 신발섬유계 직원은 계장 1명에 주무 1명이 전부다. 관련사업 및 업무는 신발을 전제하에 섬유패션이 거론된다. 이유는 신발은 국비지원이 있고 섬유패션은 전무하기 때문이다.
2000년 BEXCO 개관 이후 치러지고 있는 섬유패션과 신발산업이 동시 개최하는 국제전시회의 명칭에서도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부산국제신발피혁 섬유패션전시회”로 말이다. 이유는 신발예산으로 치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산섬유패션인들은 이구동성으로 현 ‘신발섬유계’ 행정체제로는 부산섬유패션산업의 글로벌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한다. 그간 섬유패션관련단체에서도 부산시에 섬유, 신발 분리체제를 권유하여 왔으나 행정인원확보 및 예산문제, 잦은 인사개편 등으로 업계의 의지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혀 희망이 없는것은 아니다.
1997년 창립된 부산 전 섬유패션인의 구심체인 부산섬유패션산업연합회의 권유에 힘입어, 10대전략산업으로 지정, 프레타 포르테 부산, 부산섬유패션대축제 등에 시의회의 승인으로 각각 6억2천300만원, 1억5000만원이 지원되고 있다.
이제 부산 전 섬유패션인은 염원인 섬유·신발 분리체제 및 70년대의 옛 영광을 되찾기 위해 초석을 쌓는다는 일념으로 부산시와의 유기적 체제를 통해 부산섬유패션산업의 글로벌화를 위해 매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