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봉제기술연구소(이사장 김시영, 소장 류종우)가 최근 들어 특수복 제작에 성공했다는 홍보에 힘을 쏟고 있다. 보호복, 산업안전복, 부력복(해양용), 용접작업복, 벌목복 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연구소는 이 같은 특수복 제작의 성공으로 향후 미주·유럽 등 선진 국가에서 장악해 왔던 시장점유율을 국산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특수복의 핵심은 용도에 부합한 특수소재(직물)와 동작경제 원칙에 의한 가장 편한 패턴 및 봉제기술 접목이다.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다면 왜 미주, 유럽, 일본 등 선진 국가에서만 시장을 장악하고 있겠는가. 그러나 봉제연구소는 거침없이 특수복을 쏟아내고 있다.
개발의 맹점
봉제 연구소는 특수복 제작성공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정작 소재특성만 강조하는데 그치고 있다. 소재개발은 봉제연구소의 몫이 아니다. 섬유업체가 할 일이다.
봉제연구소의 역할은 특수용도에 적합한 소재를 가지고 용도에 맞는 최적의 작업편의성을 고려한 설계와 패턴, 봉제기술을 접목하는데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최적의 작업편의성을 위해 연구소가 어떤 역할을 했느냐는 질문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개발에 공동 참여한 업체(섬유소재업체)에 사실 확인을 해보면 역시 알맹이가 없다.
올 초 연구소에 특수복 제작을 의뢰하고 공동개발에 참여했다는 경남의 A사. 해당기업 대표는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했다. 연구개발과제는 하고 싶고 신청서류작업이 어려워 연구소에서 서류를 작성키로 하고 개발에 참여했다”고 했다.
과제수행이 끝난 뒤 연구소는 업계와 공동개발 했다는 평가와 함께 홍보에 열을 올렸다. 올해 개발한 부력복, 벌목복, 용접작업복도 마찬가지. 연구소는 이들 개발제품을 들고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개최하는 ‘A+A 2009’에 참가했다. 세계시장에 홍보하고 수출시장을 개척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특수복 개발과정에서 용도에 최적 조건인 작업 및 활동의 편의성을 위해 어떤 기술이 접목됐는지에 대한 설명은 아예 없다. 왜일까. 말려도 내세워야할 핵심접목기술은 요청을 해도 묵묵부답이다. 이번에 개발했다는 용접작업복도 마찬가지.
당연히 정부 및 지자체 자금이 지원된 연구개발과제(기업지원사업도 포함)다. 결과는 1200℃ 까지도 견딘다는 소재의 특성만 내세웠을 뿐 작업자가 최적의 동작을 할 수 있도록 접목한 봉제기술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궁금해서 개발을 의뢰한 참여업체에 문의를 했다. 답은 “그냥 맡겼다”다. 의뢰한 업체도 동작편이성과 관련한 봉제특성을 모르고 있었다. 연구소 역시 노코멘트. 이 제품은 지금 독일에서 바이어에게 전시되고 있다.
해당소재를 제공한 지역의 중견기업인 S사도 버젓이 공동기술개발에 참여했다는 홍보내용이다. 그러나 확인결과 일반직물만 공급했을 뿐이었다.
연구소가 개발했다는 또 다른 제품인 부력복. 연구소와 참여업체는 최소한 개발에 접목했다는 기술의 범위를 명시했어야 했다.
그러나 단지 물에 뜬다는 부력성만 강조했을 뿐이다. 부력복은 해양레저 및 해양에서 활동할 때 구명을 위한 기능성을 갖춘 옷이다.
개발의 핵심으로 꼽히는 기술은 등판부, 양 전면판부, 소매부로 이어지는 재봉결착기술과 부력부재 내 입부구비기술, 내피 및 외피의 재봉결착기술 등을 여하히 제품특성에 맞게 조합하는 게 아닐까.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자 핵심개발 내용이지만 이와 관련한 내용은 전무했다.
정부지원 R&D 과제의 한계 이런 방식으로 지난 99년부터 10년간 밀라노 프로젝트(지역산업진흥사업)에 막대한 정부자금을 집행해왔다.
국비·지방비만 1325억 원을 웃돈다. 직물, 염색, 봉제, 패션, 섬유기계에 이르기까지 보여주기 위한 과제수행에 그친 사례가 수없이 많다.
대책마련을 위해 정부 및 지자체 공무원들이 밤잠을 설쳐야 할 상황인데도 복지부동이다. 대구성서공단소재 R사의 K사장. “정부지원 R&D 사업은 번거롭기만 하다”며 자체자금으로 개발해 매년 50~100% 신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성서공단 S사, 3공단 B사. 이들은 R&D 과제에 매달릴 만큼 몰두하고 있는 대표적 기업이다. 결과는 어떨까, 한번 알아볼 가치가 충분히 있을 듯싶다.
“다 그런 거 아닙니까.” 무심코 한마디 내뱉는 모 대학 교수, “공무원과 지원기관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기가 막힌다”는 성서공단 소재 K사 L사장.
더욱 가관인 것은 1~2단계 밀라노 프로젝트에서 드러난 이 같은 문제점들이 3단계 사업에서도 그대로 답습만 하고 있다는 것. 대한민국 R&D 과제의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