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개체·인력난 타개’ 최우선 선결 과제
10년 이상 노후설비 80% 웃돌아
향후 3년간 4800명 신규인력 필요
FTA 시대 원산지 검증 위한 소프트·하드웨어 구축 시급
매년 수천 억 예산 물 흐르듯 사라질 판
엄격한 R&D 자금 집행 감시 역할
■ 설비 노후도 지나치다
환갑나이에 100미터를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는 부담감. 대구경북산지가 안고 있는 설비노후도와 닮은꼴이다.
2007년 이후 지역섬유산업 설비 실태조사는 전무했다. 정확한 통계치가 있을 리 없다. 하지만 2010년 말 기준, 대구경북에 산재해있는 준비기계, 제직기계, 염색기 등 직물생산에 필수적인 설비의 노후도가 심각한 실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2007년 통계치를 기준으로 3년이 지난 2010년 말 현재, 10년 이상 된 설비가 80%대를 웃돌고 있는 것으로 풀이가 가능하기 때문.
준비, 염색기는 85-87%까지 10년 이상 노후설비로 추산된다. 2008년 이후 제직과 염색부문에서 설비개체가 미동을 보이고 있지만 전체 대비 2~4%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설비노후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지고 있다.
피카놀과 도요다 등 관계자에 따르면 에어제트, 레피어 직기는 최근 3년간 250여대가 국
내에 도입된 것으로 추산된다. 이중 대구경북 지역에 설치된 직기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워터제트 룸은 최신 직기와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직기를 합쳐 300여대에 달하고 있다. 설비 투자가 산지에서 미동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조사 결과 이같은 흐름을 인식한 섬유인들이 올해부터 3년간 1조6000억 원을 설비투자에 쓰겠다는 것으로 나타나 노후설비를 개선할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설비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다수의 기업들은 설비투자 대상으로 워터제트 룸과 에어제트 룸, 염색가공기, 환편기 등을 꼽고 있다.
■ 생산, 영업, R&D인력난. 어떻게…
대구염색공단에 입주해 있는 S사. 몇 년째 생산라인에서 인력난을 겪고 있다. 생산성이 떨어져 크게 고민하고 있던 중 생산인력 수요가 덜한 아이템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산업용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함으로써 생산량과 인력을 줄일 수 있는 반면 매출액과 부가가치는 오히려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게 이 회사 CEO의 계산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례는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누릴 수 있는 영역이다. 아직 경쟁력에서 뒤처지는 기업들은 인력난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섬유업종이 국내
전 산업부문에서 가장 높은 취업유발계수를 보이고 있어 이를 당장 해결하기엔 무리일 수밖에 없다.
지경부 자료에 의하면 2007년 기준 국내제조업 평균 취업유발계수는 9.2명(10억 원 매출).
IT 6.5명, 금융 10명, 콘텐츠 12.2명 등인데 반해 섬유산업은 15.5명에 달하고 있다. 음식료 23명, 인쇄 19.4명에 이어 3번째로 높다.
그만큼 생산인력 의존율이 높은 산업이고 보니 만성적인 인력난에 허덕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내 섬유산업은 95년 49만 명의 인력을 고용, 상투를 찍은 후 14년째 고용감소 추세를 보이며 2009년에는 24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대구경북 섬유산업은 지난해 120개 업체를 표본으로 한국섬유개발연구원이 조사한 실태조사에서 6.4%의 인력 부족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구경북염색조합이 지난해 상반기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는 15%대의 높은 생산인력 부족률을 보였었다.
이 때문에 올해는 11%대의 인력 충원율이 필요할 것이란 업계의 예상이다. 섬개연 조사결과에서는 향후 3년 간 대구경북지역 업계가 4800여명의 신규인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도 작업장 환경이 열악한데다 상대적인 저임금, 경영자의 마인드 결여, 비전제시 등이 부족한 기업들이 상당수여서 신규인력을 흡수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면 마케팅, 연구개발등 고급인력 흡수율은 상대적으로 높아 수출시장 개척과 신제품 개발에 점차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 이대론 안 된다 - 경영자 마인드
“버는 게 있어야 대우를 잘해 주지요.”
“쥐꼬리 봉급에 열악한 환경에서 일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경영자와 근로자들의 요구가 정면으로 상치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되돌아보면 철새형 경영자들의 과오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섬유가 잘되던 시절인 90년 초· 중반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수출 컨테이너 하나에 소형자동차 1대가 덤으로 오갔던 시절. 웬만한 섬유기업은 돈방석에 앉았다. CEO가 필드에서 라운드를 즐기고 있는 중에도 컨테이너 물량은 쉼 없이 빠져나가고 통장엔 외화가 쌓였던 시절이다. 당시 경영자들은 근로자들에게 어떤 대우를 했는지, 그리고 유보된 자금을 어디로 흘렸는지, 번만큼 근로자들에게 대우를 했는지..
섬유로 돈 벌어 빌딩 사고, 주유소 사고, 섬유와 다른 사업에 진출하고.. 이런 경영자를 경험했던 근로자들. 직무를 어떻게 수행 했을까. 비전 제시는커녕 알아야 면장이라도 할 터인데. 섬유가 호황을 누리자 장사꾼 출신 경영자, 식육점 출신 경영자들이 합세하면서 한탕주의적 경영으로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었다.
이런 추세는 2000년 초·중반 경 극명하게 나타나면서 철새형 경영자와 변방출신 오너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이시기에 고비를 넘어오면서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아이템 변화를 통해 섬유를 지킨다는 각오로 오늘에 이른 경영자들은 많이 달라져 있다.
그러나 그 잔재 또한 무시 못 할 수준까지 머물러 있어 산지섬유산업 성장에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 이동수 회장은 지난해 ‘차세대 리더 과정’ 특강을 통해 섬유인들의 비전제시를 강조한바 있다. 그는 “섬유인들이 뭉쳐 섬유산업의 비전을 제시하고 근무하기 좋은 환경조성과 연구개발, 애로기술 타개 등에 적극 나서 업종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조성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 이후 지역섬유를 비롯한 국내섬유산업 전체가 회복기에 접어들었지만 설비투자에 나선 경영자들이 가뭄에 콩 나듯 한 것도 비전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데 따른 결과로 보여 지고 있다.
준비, 제직, 염색, 후가공에 이르기까지 작업장 환경 역시 크게 개선됐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 만하다.
대구경북 염색조합 우병룡 이사장은 “염색공장 작업환경이 10여 년 전과는 몰라보게 좋아졌다”며 “환경개선을 강조하고 신규 인력이 찾아와 주길 강조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아직도 높기만 하다” 고 했다.
신규고용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고 40~50대를 웃도는 장, 노년층들이 섬유생산 공정을 지키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 탁상행정, R&D과제 수행 비효율성
“패널티보다 레벨 업으로 가자. 평가를 제대로 하기 위해 평가위원간 회의를 자주 갖자. 평가위원별로 심사방향과 평가 정도가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래서야 제대로 평가를 하겠는가. 평가의 객관성을 갖기 위해 개발지표, 항목, 기술수준, 향후 전망을 타이트하게 평가해야 할 것 같다.”
지난해 11월 산기평의 한 관계자가 스트림 간 협력개발사업 중간점검을 위한 워크숍에서 7명의 평가위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이미 1차년도 사업이 끝나갈 무렵인데도 이 같은 내용의 멘트가 평가위원들에게 건네질 정도다. 결과가 어떨까. 지난해 시작된 슈퍼섬유 융·복합 제품화 개발사업도 다를 바 없었다.
중간 점검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12월23일 슈퍼소재융합제품 개발사업과 관련해 산기평이 중간 점검차 호텔을 빌려 개최한 상호 소통을 위한 포럼. 참여기업, 수요기업, 연구기관, 대학교수 등 10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동안 추진해온 슈퍼섬유 사업이 “잘되고 있는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놓았다고 한다. 무엇이? 어떻게? 사업에 참여한 기업도, 연구기관도, 수요기업도 아무도 전체 내용을 모른단다. 그럼 누가? 산기평 담당자만이 알고 있단다. 그 담당자가 슈퍼섬유와 관련해 어느 정도의 전문성과 평가능력을 갖추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슈퍼맨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140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핵심개발사업 평가. 이런 식이다. 관련 업계전문가와 수요기업 관계자, 연구기관과 머리를 맞댄 입체적인 평가는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포럼 장에서 이런 말도 흘러나왔단다. “12개 사업 중에서 2과제만 결과가 나와도 성공”이라고. 그야 말로 살얼음 판국이다.
얼마 전 상갓집에서 만난 모 대학교수와 중소기업 대표 모씨가 한말이 실감이 난다. “다 그런 거 아닙니까.”
여전히 정부의 2조 원이 넘는 연간 R&D비용이 밑 빠진 독 안 신세다. 스트림간 협력개발 사업이 올해부터 글로벌 전문기술개발사업으로 통합, 추진되는데 이어 원천기술개발, 부품소재개발, 기술혁신개발, 슈퍼섬유개발, 메디텍스 개발 등 섬유산업이 추진해야 할 R&D과제는 부지기수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