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고 민망하다.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채 밀어 부치면 된다는 관의 자세가 그렇다. 그들이 주관하는 회의든, 사업이든, 설명회든 모두가 그렇다. 그들의 언행은 한번도 아니고 몇 번씩 놀라게 한다.
첫째가 자신감이다.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오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자리를 바꾸면 그만. 앉아있어도 무엇을 잘못했는지 인지를 못한다. 포장에만 바쁠 뿐, 칼 자루를 쥔만큼 책임질 사람이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은 없다.
80년대 중반 이어령 박사(전 장관)가 펴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이것이 한국이다’는 오늘 우리 관의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다.
섬유산업이 쇠락하기 시작할 즈음인 99년 4월. 섬유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시작된 밀라노 프로젝트. 6800억 원의 예산만 집행하면 다 되는 줄 알았다. 2단계 1800억 원도 마찬가지. 그러나 예산집행을 그림자처럼 따라야 하는 결과물(Output)에 대한 계산은 없었다. 당시 예산으로 경쟁하듯 사들인 설비들의 효용성은 어떤지 지경부 주무과장을 역임한 모씨에게 물었다.
-가동되는 현장을 가 보았는가. “아니.”
-한번 가서 확인해 봐야 되는 거 아닌가. “언제 한번 가보지” 이런 식이다. 스트림간 협력기술개발사업, 수퍼소재 융합제품 사업, 메디텍스 사업 등 굵직한 예산으로 이미 추진되거나 추진될 사업들이 아직도 많다. 메디텍스 사업은 경북도가 오랜만에 따낸 사업. 그러나 대구지역이 수 십 년간 닦아놓은 연구기반을 공동으로 활용하면 적은 예산으로 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으련만, 도는 자기네들 행정구역 내에서만 사업을 전개하겠다고 버티고 있다.
사업권을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니고 기존의 연구소 설비와 시설을 함께 활용하자는 얘기인데도 그렇다. 과거의 시행착오를 뻔히 보면서도 연구소 다시 짓고 설비 다시 도입하고. 대구는 대구, 경북은 경북이란 논리에만 빠져있다. 아직도 왜, 무엇을, 어떻게 라는 기본적인 프로세스는 뒷전이다. 꽉 막혀있다.
특히 사업추진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에 대한 개념은 아예 상실한 듯하다. 마치 밀라노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때를 방불케 하고 있다.
아라미드, 탄소섬유를 축으로 하는 수퍼소재 융합제품화사업. 1400억 원이 투입되는 대형사업이다. 원천기술개발이 아닌 상품화 사업이다. 그런데도 1차 사업 2년은 아예 상품화를 위한 연습기간으로 흘러가고 있다. 사업자가 선정되고 벌써 2년차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상품화는 오리무중이고 한 두 건만 성공해도 만족한다는 분위기다.
스트림간 협력개발사업. 지난해까지 4년간 853억 원을 지원한 사업이다. 비교적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 듯 하지만 핵심기술 요체를 들여다보면 맹점도 많다.
대다수 원사, 원사가공에서 승패가 좌우되는 사업이 많다. 그런데도 스트림 구색을 맞추기 위해 두서없이 스트림별 기업과 기관을 참여시켜 추진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직기만 돌리고도 참여기업, 평생 처음 해보는 염색을 하고도 참여기업이다.
노하우가 쌓인 염색업체를 찾지 못한 건지, 알고도 피해간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핵심기술의 요체인 원사가공도 참여기업보다 비 참여기업이 더 좋은 품질에 더 좋은 가격으로 생산한다면 어떻게 설명이 가능할까. 그것도 모자라 유발 매출액을 부풀려 성과를 강조하는 구태한 행태도 마다하지 않는다.
껍데기만 남은 이시아폴리스
대구지역 섬유산업을 패션어패럴 분야로 고부가가치화 하기 위해 조성중인 이시아폴리스. 총3조3000억 원이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으로 내년 경 완공 예정이다.
이 가운데 패션어패럴산업 발전이란 목표가 이시아폴리스 사업추진의 핵심 중 핵심이다. 그러나 패션어패럴 기업들은 위치 선정부터 인프라까지 패션어패럴 산업이 들어설 기반 조성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쉽게 말해 단지 내 패션어패럴 기업들이 들어설 입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말이 맞다면 대구시는 돌이킬 수 없는 중차대한 예산낭비와 사업을 망친 장본인이 돼야 한다.
패션스트리트에 들어설 명품 아울렛도 용두사미 격이 돼버려 불 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시는 2008년 롯데측과 프리미엄 아울렛을 입점시킨다는 협약을 체결했다. 이 때문에 패션스트리트가 흥행할 것이란 소문이 퍼지면서 입주를 희망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했다.
해외 중저가 브랜드와 국내브랜드를 입점시키겠다는 롯데측의 때늦은 계획변경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역 유통계와 시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패션기반도, 패션스트리트도 용두사미로 전락해 껍데기만 남을 이시아폴리스. 더욱 가관인것은 요즘 이시아폴리스는 완전히 주객이 전도된 분위기다.
포스코건설이 추진 중인 고급아파트만 1차 분양에 이어 2차 분양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기 때문. 대구시가 그렇게 강조하던 어패럴단지가 주거단지로 전락되는 순간이다. 웃지 못할 관치의 소산이요, 아웃풋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세스를 간과한 데 따른 참혹한 결과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지경부와 손발이 착착 들어맞는다. 이런 이시아폴리스를 11월 중 패션특구로 지정한다고 나섰다. 이런 발표가 땜빵 처리만으로 들리는 게 부끄럽고 안타까울 뿐이다.
무책임한 대구시
만년 바닥권 경제. 7대 도시 중 6위의 수출규모와 재정자립도. 실업율 3위, 1인당 GRDP (지역내총생산) 1347만 원으로 전국 최하위다. 광주, 대전보다 못하다.
대구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 이젠 대구가 정부에 국책사업에만 매달리지 말고 지방 분권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자성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도 대구 시장은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오히려 자신감은 그대로다. 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신기술산업국도 피차일반. 어차피 임기 끝내고 자리를 떠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지 모를 일이다.
이 같은 그들의 안이한 행보가 대구 소재 중소기업들을 성주, 칠곡, 경산 등 인접한 경북지역으로 내몰고 있다. 기업유치가 급박한데도 오히려 기업들을 내몰고 있는 형국이다.
성주의 경우 공장밀집지역(선남)에 이미 수십 개의 대구기업들이 이전해 가동하고 있다. 현재 조성중인 성주 일반산업단지(85만 평방미터) 신청 기업 가운데 50%가 대구지역 기업들이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무대책이고 육상경기대회, 신공항, 과학 벨트 국책사업 등 정치적 이슈에 편승한 뜬구름 잡는 사업에 매달려 있다. 보기에도 민망하고 안타깝다.
2011년 4월18일. 새벽 3시 기상. 준비를 마치고 자동차, 버스, 기차에 각자 몸을 싣는다. 오전 8시 서울 팔래스호텔에서 열리는 지경부장관 주재 ‘섬유수출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대구경북 섬유단체 수장들이다.
회의를 준비하기 위해 관련단체, 연구기관들은 보름 동안 고생도 많이 했다. 모두가 섬유산지의 최대 현안과제들이기 때문. 두 시간여의 간담회. 내려오는 수장에게 조심스레 전화를 걸었다. 피곤한 목소리로 받는다.
-결과는요. “으음, 뭐, 그렇지요.”
-그렇다니요.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