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30주년 특집] 봉제 육성, 서민과 지역 경제 살린다

도랑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돈도 줍고

2012-07-20     서현일
# 동네 주민들에게 ‘혜경이네’라고 불리는 부부는 창신동에서 봉제일을 하고 있다. 여대, 여고, 여중을 다니는 3자매를 남부럽지 않게 키우기 위해 창신동 소재 봉제공장들로부터 낱일을 받아 집에서 작업한다. 27년여 경력으로 기술이 좋아 바지, 남방, 치마 등 모든 의류 봉제가 가능하다. 원피스를 기준으로 하루 평균 180~200벌의 옷을 만들고 부부가 한 달에 버는 돈은 약 700만 원. 작업에 드는 실 값과 전기세 등 120만 원 정도를 제외하더라도 58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린다. 낱일 작업은 시간과 양을 스스로 정할 수 있어 인근에는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여가를 즐기면서 일하는 노부부도 있다. # ‘동현이네’도 못지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약 8년쯤 전에 남편을 잃고 모친 혼자서 시어머니 봉양과 자녀 양육까지 해왔다는 것. 올해 29세 된 딸은 얼마 전 결혼을 했고 아들은 군 제대 후 복학을 했다. 모친은 낱일로 월 평균 600~800만 원을 벌어 생활비와 자녀 등록금을 대왔다. 솟아오른 대학 등록금이 부담스럽지만 이는 현재 대학생을 자녀로 둔 대한민국 어느 가정이나 겪는 문제일 뿐 이 가족은 남한테 아쉬운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살아왔다.

‘보릿고개’ 넘을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봉제 산업 활성화는 서민을 살리고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최적의 대안이다. 대부분의 봉제작업은 공장 직원들뿐 아니라 객공과 낱일 기술자들이 함께 수행한다. 업주들이 공장에 많은 직원을 채용할 수 없는 현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티셔츠나 정장 등의 경우 6월 말부터 8월까지 일감이 없는 비수기를 겪기 때문에 직원 수와 비례해 급여에 대한 부담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장에서 일하는 만큼 보수를 받는 객공과 가내수공업으로 작업을 하는 밑일 기술자들에게 작업량을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과정에서 일감이 없으면 앞의 사례와 같이 봉제 기술 하나로 생활을 영위하는 가정은 이 시기를 힘들게 보낼 수밖에 없게 된다. 낱일 작업을 하는 ‘하나네’는 업주가 시다와 미싱 기술자를 한 명씩 고용, 성수기에는 월 1000만 원을 번다. 고용한 직원들에게 각각 160만 원, 180만 원의 월급을 지급하고 남는 금액은 660여 만 원. 기타 부대비용을 제하더라도 자녀를 키우고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여름과 겨울 각각 2개월 이상의 비수기가 있어 실제로 돈을 버는 기간은 1년 중 8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창신동 소재 봉제업체 진명사 강만성 사장은 “서로 상황을 뻔히 아는지라 웬만하면 일감을 주고 싶은데 공장도 일감이 없어 일찍 퇴근하거나 휴식기를 갖는다”며 “연속적으로 일감이 연결된다면 봉제 관련 기술자들은 물론 한 달 식사를 제공하는 식당과 야채 가게, 심지어 문구점까지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직원 1인당 한 끼 식사에 보통 3500원~4000원의 비용이 들어가는데 일감이 많은 시기에는 저녁까지 두 끼를 먹고 비수기에는 점심 한 끼만 먹기 때문에 식당의 매출도 반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식당에 반찬거리를 제공하는 인근 가게들도 영향을 받으며 재단에 쓰이는 볼펜, 가위 등의 판매가 부진해져 문구점 운영에도 애로가 생긴다. 때문에 봉제 산업 육성은 공장 밀집지역에 거주하는 서민의 안정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된다. 보문동 소재 봉제업체 아이템에서 객공으로 일하고 있는 김영애(47)씨는 일감만 보장되면 한 달 약 450만 원의 소득을 얻는다. 이를 바탕으로 남편과 힘을 모아 딸의 등록금뿐 아니라 창신동에 있는 아파트도 구입했다. 김 씨는 “가지고 있는 기술을 썩히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며 “일감만 확보되면 자정 넘은 시간까지 열심히 일해서 돈도 벌고 보람도 느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정부와 시를 비롯한 단체들에서 클린사업 등 각종 지원이 행해지고 있지만 현장의 업주와 기술자들은 비수기를 없앨 수 있는 일감 지원과 공임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 번영사 배영수 사장은 “취급하는 품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여름 비수기는 지역 대다수 공장들이 연례행사로 겪는 보릿고개”라며 “이 시기 손해를 최소로 만들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이삭어패럴 김광희 사장도 “영세한 공장들은 비수기에 대출을 통해 공장을 꾸려나가고 바쁜 시기에 번 돈으로 이를 갚는다”며 “그러나 사업자등록을 늦게 했기 때문인지 신청 후 대기시간이 길고 금액이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공장과 일감을 연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도 제기됐다. 우진어패럴 장종문 사장은 “대기업들이 회사 물량을 입찰하면 공장들끼리 경쟁을 통해 단가는 내리고 품질은 높일 수 있을 것”이라며 “한 공장에 물량을 집중하기 보다는 규모에 따라 보다 많은 공장들에 오더가 분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봉제업계는 호수가 필요한 게 아니라 샘물이 필요하다”며 “일감이 한 번에 집중되기보다는 끊임없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