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인간 내면을 고뇌하다
‘흑인창녀를 위한 고백’ 대학로 예술극장서 막 올려
거장 김정옥 연출 100번째 작품
디자이너 박항치, 무대 의상 참여
연극연출계의 거장 김정옥의 100번째 작품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이 오는 23일부터 내달 11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김정옥 연출의 ‘데뷔 50주년, 100회 기념공연’답게 이 작품은 월리암 포크너원작 소설을 알베르 까뮈가 희곡화한 것으로 김성녀, 오영수, 권병길, 이호성, 전국향, 변주현, 강진희 등 내노라하는 연기파 배우들이 무대에 함께한다. 예술감독은 최치림이 맡았다. 특히 패션계에서는 대한민국 디자이너의 자존심 ‘옥동’ 박항치<사진>가 극의 시대적 배경과 감성을 대변할 무대의상을 지었다.
김정옥 연출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창설하고 1959년부터 1997년까지 예술대학원원장으로 재직하면서 후진양성과 연출작업에 매진해 왔으며 올해 여든을 맞은 나이에도 소년같은 감성과 왕성한 창조력으로 귀감이 되고 있는 거장이다.
그의 100번째 연출작품 ‘흑인 창녀를 위한 고백’은 1969년 극단자유의 정기공연작품으로 처음 선보여 제 6회 백상예술대상의 연출상을 받은 바 있다. 유형화된 미국상류층 사회를 즐겨 다루는 윌리엄 포크너의 원작인 이 작품은 인간의 죄의식과 그에 따른 책임문제 등을 파헤쳐 놓았다.
이 작품은 백인여자와 흑인 하녀의 이야기. 두 여인은 창녀생활의 과거를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상류사회의 여인이 된 백인 ‘템플’이 그녀의 아기를 죽인 흑인하녀 ‘난시’를 변호하는 과정이다. 파국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자신의 과거를 고백함으로써 사회적 모순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난시’의 절규와 더불어 인간의 수치와 본성의 적나라함을 표출하는 ‘템플’의 장시간 독백작면이 이 작품의 백미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난시’와 ‘템플’의 여주인공이 포커싱된 1969년 초연과는 달리 올해 공연에는 아픈 진실을 강요하는 ‘스티븐스’와 지난 잘못을 덮으려 했으나 결국 받아들이고 마는 ‘고완’의 역할도 세심하게 다룰 예정이다.
박항치 디자이너는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부유한 가정을 배경으로 일어난 어두운 가족사를 담고 있는 이 작품의 설정에 맞게 당시 고증에 충실, 도회적 분위기로 의상을 제작했다”고 의상 포인트를 설명했다.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후반으로 이어진 미국 대공항으로 금주법에 반발한 불법 주류판매와 매춘 등 음지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고 자 했다는 것. 주인공들이 비록 미국의 부유층이지만 이같은 배경을 반영해 화려함보다는 모던한 실루엣으로 극의 분위기를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의상을 디자인 한 것이다.
극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인 중 상류층 부인 템플은 투피스의 정장에 실버폭스 조끼로 사치스러움을 표현했다. 또 죄수가 된 하녀 신분의 흑인창녀출신 난시는 상황에 맞도록 검소한 의상을 입힌다.
남자 배우들은 4버튼 혹은 더블 브리스트 자켓에 허리는 2턱이지만 밑단을 슬림한 컵스바지로 수트를 매치했다. 1930년대의 클래식한 미국 남성복식을 기초로 제작한 것. 울과 코튼 등 천연소재를 주로 활용했고 스트라이프 패턴의 엑센트와 베스트를 이너로 입어 무대에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도록 했다. 틀이 잡힌 기본형 넥타이와 보우타이, 또 스카프모양의 네크치프로 포멀한 멋을 한껏 연출했다.
박항치 디자이너는 권위있는 연출가와 실력파 배우들이 참여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져주는 예술적 연극무대에 의상디자인을 해 오고 있다. 명동예술극장과 국립극장, 예술의 전당 등 매년 2~3차례 주요무대에 의상을 연출함으로써 극의 예술적가치를 더 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