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특별게재] 김용숙 교수 전북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심준영 겸임교수 전북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 발전 양상은 달라도 ‘유사성’ 있어
동·서양 종이 의상에 대한 비교 연구
I. 서론
중국에서 서기 105년에 채륜에 의해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종이는 일상 생활에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잡았다. 고대 중국에서는 종이 생산 기술이 국가 기밀로서 철저하게 보호되었지만, 불교 문화의 확산 그리고 실크 로드를 통한 서양과의 무역로 개척 등을 통해 서서히 주변국으로 전달되었다.
동양에서 종이는 문화의 일부로서 주로 승려들에 의해 불교 경전과 함께 전달되었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는 실크로드에서 교역되는 중요한 물자로서 소개되었다. 서로 다른 경로를 거치면서 종이는 동양과 서양에서 서로 다른 전통과 문화 속에서 발달하였다.
동양의 종이는 단순히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일상 용품 그리고 종교적인 목적에 사용될 수 있도록 개발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종이는 언제나 정신, 문화 그리고 자연적인 체험과 밀접하게 연결되게 되었다.
서양에서의 종이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 기능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발전되었다. 서양 사람들은 종이를 값비싼 무역 상품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들은 물리적, 화학적 과정을 이용하여 좀 더 저렴하고 손쉽게 종이를 제작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다.
종이의 의미와 발달 과정이 동양과 서양에서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양 문화권에서 매우 유사한 종이 형태가 등장하는데 바로 종이 의상이다. 동양 문화권에서 종이의상에 대한 기록은 한국과 일본에서 찾아볼 수 있고, 서양에서는 독일과 핀란드에서 찾을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두 문화권에서 서로 다르게 발전한 종이가 유사한 형태의 종이 의상을 선보인다는 점이다. 본 연구에서는 동양과 서양에서의 종이 의상 등장의 배경에 대해 조사하고, 또한 종이 의상의 변화과정에서 나타난 차이점을 비교하고자 한다.
II. 문헌 고찰
종이 의상은 종이로 제작된 드레스를 뜻한다. 종이 의상의 제작과정은 두 가지 방법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지의’(Kamiko)이고 다른 하나는 ‘지포’(Shifu)이다. ‘지의’는 두꺼운 종이로 만든 종이 의상이다.
두꺼운 종이는 많은 종이를 겹치거나 쌓은 후 부드러운 촉감을 얻기 위해 반복해서 비비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지포’는 종이를 이용해서 재직한 원단으로 만든다. 직조된 원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를 실로 만들기 위해 규칙적으로 자르고 접거나 꼬아야 한다.
최초의 종이 의상 기록은 일본에서 승려가 제작한 것으로, 헤이안 시대인 988년에 나타난다. 이 자료를 근거로 동양 문화권에서의 종이 의상의 역사가 1000년 이상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서양에서 나타나는 종이 의상에 대한 기록은 1775년에 스웨덴 과학자가 쓴 일본 종이원단(shifu)에 대한 글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많은 과학자들이 서양-스타일의 종이 실 제조 기계를 개발했고, 이를 통해 서양에서의 종이 의상은 약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III. 결과
종이 의상에 대한 기록을 조사한 결과, 동양과 서양의 종이 의상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고, 종이 의상의 변화 과정 중에 차이점도 찾을 수 있었다.
1. 등장 배경에서의 유사점
동양과 서양에서 종이 의상이 개발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전쟁이나 기근 등으로 인한 소재의 심각한 부족현상이었다. 조선시대의 기록물인 임하필기에 따르면, 인조는 관북지방에 500장의 저고리와 함께 의복을 제작하도록 400장의 낙폭지를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일본의 종이 의상은 전쟁 기간 중에 주로 농부들에 의해 착용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19세기 중반의 서양에서는 소재의 부족으로 인해 사람들은 원단을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종이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특히 서양에서의 종이 의상은 제1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 많이 나타난다.
연합국들은 독일의 수출입을 통제했고 이로 인해 물자의 부족이 발생했는데, 특히 원단의 부족이 심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종이 실이 원단을 대체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따라 이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소재의 부족이 종이 의상 개발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종이 의상의 등장 이후, 사람들은 다양한 목적으로 종이 의상을 개발했는데, 특히 수의로서 널리 사용되었다. 동양의 불교 문화에서, 사람들은 흔히 죽은 이를 염하기 위해 종이 의상을 사용한다. 또한 서양에서도 19세기 후반 그리고 특히 전쟁 기간 중에, 사람들은 종이 의상에 죽은 이를 감싼 채 매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까지도 가난한 이들에게는 지속되었다.
2. 종이 의상의 변화 과정에서 나타난 차이점
전쟁이 끝나고 기근이 해결되는 등 상황이 변하자 종이 의상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고, 많은 종이 의상들이 사라졌다. 이때 동양과 서양에서의 종이 의상은 상이한 변화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동양에서의 종이 의상은 일부 유지되고, 서양에서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동양에서, 종이는 언제나 정신, 문화 그리고 자연적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종이의상은 어렵고 힘겨웠던 시간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종이 의상을 의도적으로 입는다는 것은 어려움을 견디겠다는 뜻과 연결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의 승려들은 가장 추운 겨울날 종이 의상만 입고 순수한 정신을 얻기 위해 수행한다. 수행의 마지막 날에는 입고 있던 종이의상을 ‘불태움’으로써 정화 작용을 거친다. 이들에게 종이 의상은 정신과 육체를 연결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서양에서는 전쟁이 끝나고 원단을 위한 소재들이 사용 가능해지자마자 종이 의상이 사라졌다. 서양 사람들은 전쟁 기간 동안의 기억을 연상하게 하는 종이 의상과 그에 대한 기록들을 모두 ‘불태움’으로써 모든 것을 잊고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했다. 동양에서의 종이 의상의 ‘불태움’은 정신세계와의 연결과 소통, 기억 등을 의미하고, 서양에서의 ‘불태움’은 과거와의 단절과 망각 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