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기득권·구태·악습 버려야 산다”
섬유업계, 자성과 혁신 ‘섬유희망 키우자’ 사자후
수요자 맞춤형 개발, 미래 먹거리 창출 ‘한목소리’
#1.이제부터는 수요자 맞춤형 소재개발이 포커스다.(4월15일자 한국섬유산업연합회 인사 및 조직개편 방향)
#2.섬유산지 먹거리 강화, 이대로는 안 된다.(4원15일 한국섬유개발연구원 소회의실서 열린 스트림별 실무책임자 간담회)
#3. 한국 섬유산업은 대구 산지 스스로가 매너를 지키고 이미지 개선에 나설 때 새로운 희망을 열어갈 수가 있다.(4월15일 남복규 영풍필텍스 사장 인터뷰)
지난 4월15일, 이 날 약속이나 한 듯 섬유업계 전반에 걸쳐 한국 섬유산업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한 자성적인 목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섬유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와 연구분야 실무진들, 그리고 국내 직물개발을 리드해 나가는 한 섬유업체 대표가 그 주인공들이었다. 자성의 목소리가 한국 섬유산업의 미래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날 동시에 제기된 신랄한 지적들은 업계의 강한 자정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날 지적들은 당장 불거진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다. 단지 내뱉기가 쉽지만은 않은 사안들이었을 뿐이다. 사실 업계 스스로가 환부를 놓고 질타하고 반성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 자체가 쉽지만은 않다. 외부의 사시적인 편견, 예를 들어 사양산업 운운 등을 더욱 고착화시킨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더더욱 그렇다. 이는 산업의 생존환경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부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업계의 폐단과 관련 대놓고 미주알고주알 식으로 까발리는 것은 각 산업마다 금기사안으로 삼을 정도다.
섬유업계가 산업계의 이 같은 관행을 깨고 자체 폐단의 공론화에 나선 것은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을 반증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당장 섬유산업이 처한 현실 자체가 이를 입증한다. 뒷걸음질 치는 수출과 늘어나는 수입 증가세가 그것이다. 이는 국내 섬유산업기반 공동화를 부른다. 섬유산지의 설비 노후화는 이를 입증시키는 명백한 사례다. 설비 노후화는 생산성을 깎아내는 동시에 신제품 개발의욕 감퇴와 직결된다. 섬유산지가 새로운 제품 개발에 엄두도 못 낸다는 자성의 목소리와 궤를 같이하는 부분이라 않을 수가 없다.
업계는 또 스트림별 협력을 통한 연구개발 방향의 대전환까지 서슴지 않았다. 공급자 위주의 개발에서 수요자 지향형으로 맞춤형 개발에 기치를 높이자는 의미를 담았다. 지금 정부과제 지원과 관련 업계에서는 ‘양 날의 칼’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자신의 칼에 자기 몸이 베이는, 그 폐해가 벌써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신호탄이라 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의미에서 스트림간 협력사업 과제발굴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새로운 수요창출을 위한 과제발굴에 업계가 머리를 맞대는 것은 섬유산업의 희망적인 미래와 직결된다. 이 또한 뒤늦은 감이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발상의 전환 그 자체만으로도 큰 뜻을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날 세운 업계의 자정 목소리는 모두 미래 먹거리 창출과 직결돼 있다. 현재 한국섬유산업 상황은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더 지체하면 섬유산업 전체가 공멸이라는 빨간 경고등마저 켜놓은 상태다. 이 시점서 섬유산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은 뼈를 깎는 고통을 통해 새로운 변화에 적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과 진배없다.
이는 ‘울어야 젖준다’는 기득권을 던져야 얻을 수 있는 것과 같다. 기득권은 다름 아닌 섬유업계에 팽배한 정부의 지원확대다. 문제는 이 같은 기득권을 섬유업계가 과감히 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섬유업계가 암울한 현실과 관련 구태를 깨자며 자성과 자정에 한목소리를 내고 직시하자는 것은 다름 아니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의미와 같다. 문제는 업계의 요구를 담은, 즉 누가 실천의 주체가 되느냐다. 실천의 주체는 일사분란하게 업계의 추진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특히 업계가 변화와 혁신을 강하게 갈구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이는 큰 명제라 않을 수가 없다.실천의 주체가 이의 성공여부를 좌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섬유산업의 대변자는 한국섬유산업연합회라 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서 섬산련이 어떻게 오늘의 위치에 올랐느냐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다. 문제는 앞으로의 가늠자 역할에 달렸다. 섬산련이 4월15일자 조직개편을 통해 지향한 것은 업계가 갈망하는 요구에 화답했다는 데 큰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업계의 변화와 혁신에 부응하는 실질적인 기업지원에 포커스를 맞췄다. 단적으로 아랫목의 온기에 그치지 않고 구들방 전체로 확산시키자는 것과 같다. 특히 섬산련이 섬유산업의 새 판을 짜나가는, 대표성을 갖는 실질적인 실천의 주체가 되겠다며 스스로 자임하고 나선 것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이제 무엇보다 우선하는 것은 미래 먹거리 창출을 위한 실천에 달렸다. 치부를 드러내놓고 비판을 가하는 것도 큰 용기라 않을 수가 없다. 그렇지만 더 이상 말로서 그쳐서는 안 된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는 않지만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온 업계의 사자후가 한국섬유산업에 대한 깊은 애증의 발로라는 차원에서 보면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