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김성원 (주)제일케미컬 대표이사 - 장벽 높은 선진 원단시장…탄탄한 실력 앞에 와르르∼
PV 출전 4년… 톱 브랜드가 스스로 찾아와요
창의 기술 기획 3박자 원단…㎡당 14달러에 공급
틈새시장 무궁무진…‘할 수 있다’ 자신감 다잡아야
“이탈리아와 일본이 장악한 고가 원단시장은 진입 장벽이 높지만 그렇다고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 우리 실력은 주류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선진국과 비슷한 색깔의 기획력으로 틈새시장 발굴을 승부수로 삼아야 합니다. 어려운 시장 환경 또한 우리만 직면한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 탓하기에 앞서 이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다잡을 때에요.”
지난 23일 기자가 찾은 서울시 강서구 소재 직물업체 (주)제일케미컬 사무실은 내달 중순 열리는 프레미에르 비죵(이하 PV)에 전시할 원단샘플 작업으로 분주하기가 그지없었다. 그 와중에 일본 바이어가 샘플을 보냈느냐는 확인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바로 일본 파트너를 앞세워 유럽시장 공략에 앞장서는 틈새시장 개척의 현장이었다.
이 날 이곳에서 만난 김성원 제일케미컬 사장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었다. 문제라면 시장 장악에 단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것이라 했다. 목표달성 욕구가 당장 목 밑까지 차올랐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차분하게 걸어가는 뚜벅이 행보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다. 물량 경쟁이 끝난 마당에 우리가 살 길은 바로 창의력에 기술력을 접목시켜 나가는 기획력의 실천이라는 것이다.
“PV 출전은 선진시장의 고가 브랜드를 만나는 통로가 됐습니다. 이제 선진국 바이어가 우리가 기획한 제품을 찾아옵니다. 바이어들은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 프랑스 여성복 브랜드 ‘마주에’ 등 대부분 시장파워가 센 고가 브랜드라 할 수 있습니다.”
김 사장은 PV출전 4년은 한마디로 글로벌 톱 브랜드와의 만남이라 평가했다. 그리고 바이어의 관심 확대는 실력이 뒷받침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며 강한 자신감을 표출시켰다. 그는 PV 출전 전에는 고가 브랜드와 만날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개발은 했지만 반응테스트를 할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는 당시 텍스월드 전시에 주력할 때였다. 그리고 2010년 PV 첫 출전은 그에게 새로운 원단세계의 문을 열어젖히는 길라잡이가 됐다.
김 사장은 1999년 후가공 전문 덕성 입사와 함께 섬유와 연을 맺었다. 당시 섬유산업 분위기는 볼륨 위주의 저마진 수출에 젖어 있었다. 대부분 섬유업체가 이익보다 매출을 우선하는 비즈니스였다. 덕성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익률 저하상태가 지속되자 덕성 경영진은 생산과 무역을 분리하는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분리된 무역분야 자회사는 저가판매 비즈니스 때문에 곧 한계상황을 맞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가 발등의 불이 됐습니다. 바이어는 저가제품만 요구하는데 도대체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일 하는 게 싫어져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런데 퇴사보다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는 권유가 왔어요. 트렌드 파악과 동시에 제품을 개발하는 기획업무를 맡겨 달라 했습니다.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한 것이죠.”
나이키가 제조기반이 없지만 전 세계시장을 장악한 것은 마케팅과 기획이라는 양 축의 조화가 아니었던가? 그는 기획업무를 맡으면서 섬유산업의 새로운 시야를 보는 기회를 맞는다. 특히 시장조사와 트렌드 파악은 사전기획 역량을 배가시켰다. 여기에다 원단 선진국 이탈리아·일본의 정보력과 생산력을 꿰뚫게 되자 그의 기획능력은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점차 바이어들로부터 이탈리아나 일본산과 똑같은 제품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까지 들어왔다. 그는 ‘가장 성공한 기획은 제품이 잘 팔려나갈 때’라고 말한다. 그리고 2010년 그는 독립경영에 나섰다.
“일본의 패션 강자 월드그룹과 원단분야 창의력 최고봉 다끼사다와의 만남은 선진시장의 문을 여는 기회였지만 PV 출전은 글로벌 톱 브랜드와 직접 거래를 트는 분수령이 됐습니다. 사실 직접거래는 페이먼트 상 리스크가 크지만 그만큼 마진 확보가 뒤따라요. 문제는 바이어 우위의 페이먼트 방식을 어떻게 개선시키느냐 하는 겁니다. 답은 제품의 실력에서 나오죠.”
그의 원단 비즈니스는 현재 생산원단 80%가 일본 상사를 통해 이뤄진다. 기획력을 인정받은 원단이 선진시장용인 것은 알지만 어느 브랜드에 공급되는지는 모른다 했다. 에이전트가 철저하게 최종 목적지를 숨기는 탓이다. 그렇다보니 생각보다 마진율은 크지가 않았다. 그런데 PV에 출전하면서 또 다른 비즈니스 세계가 다가왔다. 직접거래였다. 하지만 페이먼트가 문제가 됐다.
국내든 선진시장이든 브랜드와 유통의 결재기한은 통상 6개월에 이른다. 자본력이 약한 상황에서 바이어 규정대로 계약을 하면 자칫 흑자부도로 내몰릴 판이었다. 당장 이의 개선협상에 나섰다. 톱 브랜드가 달려드는데 겁날게 없었다.
한 달 여신에 선납금 30%를 받는 조건의 중재안을 냈다. 브랜드가 흔쾌히 승낙했다. 이 브랜드가 바로 ‘마주에’(한국식 표기로 마제, 갤러리아 백화점 진출)다. 이 원단 가격은 ㎡당 14달러에 이른다. 제일케미컬이 한국산 원단 최초로 공급루트 확보하기 전까지 마제의 원단 사용비중은 이탈리아산 90%, 일본산 10%였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역시 직거래로 원단을 공급한다. 현재 제일케미컬 직거래 비중은 20%에 이른다. 김 사장은 “이제야 제대로 된 가격을 받는다”며 “제조자가 충분한 마진을 확보하는 케이스”라 말했다. 그 이면에 그의 기획력, 바로 실력이 있었음은 불문가지다.
“아직도 국내 대부분 직물업체가 모든 품목에 손대는 백화점식 판매에 젖어 있습니다. 원단 시장에서 생존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방법이 없지 않느냐’는 면에서 이해는 되지만 이는 원단 산업의 질적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나 다를 바가 없어요. 글로벌 고가 원단시장 공략은 단 하나의 제품이라도 특화가 되었을 때 가능합니다.”
그는 지금 한국 원단산업은 중저가 제품에서 중고가 체제로 전환하는 과도기 상태에 있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고가시장 진출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라 할 수 있는 이탈리아·일본산이 장악한 고가시장 진출은 결코 갑자기 이뤄질 수가 없다고까지 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전문 특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게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력을 동반한 선 기획 강화가 그것이다.
“㎡당 10달러가 넘으면 바이어가 핸들링 자체를 기피합니다. 한국산 원단은 아직도 ㎡당 6∼7 달러 수준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죠. 선 기획 강화를 통해 당장 이 이미지부터 깨나가야 합니다.” 그는 선 기획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리는 동시에 이탈리아·일본산이 장악한 고가 원단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히는 열쇠라 했다. 그리고 틈새시장 개발과 확대를 목표로 삼아 역량을 집중시켜 나가자는 뜻을 펼쳤다. 그래야 한국 직물업계가 고가 원단시장의 주류대열에 올라서는 기회를 맞는다며 의미를 강하게 부각시켰다.
“앞으로 패션과 기능을 접목시켜 나가는 것을 기획의 포커스로 삼았어요. 이를 위해 고어텍스 기능을 능가하는 필름 개발도 마무리 했습니다. 한마디로 나이론과 폴리우레탄의 융합, 그 사례가 없지 않습니까? 소비자들이 빵빵한 다운파커에서 벗어나 댄디하거나 엘레강스 연출이 가능한 패션성 다운파커를 착용할 날도 머지않았습니다. 패션과 기능을 접목하는 다양한 제품개발, 바로 최고 원단 기획 토탈 솔루션 업체로 나아가는 아젠다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