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엄격하고 치밀하게 관리하라” 당부

2014-11-20     이영희 기자

노라노, 젊은 후배들과 긴 ‘소통’ 시간 가져
60년 현장경험 사례 들어 피부와 닿는 조언

“일이 닥치면 불평불만이나
생각보다 무조건 액션부터 취하라”

한국패션역사의 산증인이자 살아있는 전설로 존경받는 디자이너 노라노 선생이 지난 15일 패션계와 문화, 예술전반에 종사하고 있는 신진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지난해 ‘노라노(NORA NOH)’ 패션 60주년을 기념 ‘라 비엥 로제’ 전을 개최했고 올해 다큐멘터리 방영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24시간을 쪼개어야 하는 바쁜 일정에도 후진들의 올 곧은 뿌리내림과 향방을 제시해 주기위해 기꺼이 멘토가 됐다.

이날 노라노 본사에는 13명의 신진디자이너와 관련계 종사자들이 방문했으며 두시간 반에 걸쳐 각각의 위치에서 나아가야 할 바와 자세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노라노 선생은 기꺼이 지난 60년간 본인의 발자취를 통한 현장경험을 예를 들어 가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86세인 지금에도 현업에서 일을 할 수 있는가?”란 질문에 노라노는 “평생 디자인하고 싶다면 자신의 체력과 능력, 한계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오래 달려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컨트롤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노라노는 새벽에 일어나 차를 마시고 뉴스를 본뒤 스트레칭과 운동을 정확한 시간에 매일 생활화 해 왔으며 충분한 식사와 함께 일을 할 때는 고난이도의 집중력을 발휘한다. 사적인 시간없이 달려왔지만 일이 좋아서, 좋은 일을 평생하기 위해 체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금도 패턴을 직접 제작하기 때문에 어깨가 아프거나 상하지 않도록 매일 아령으로 단련시킨다고 전해 좌중을 놀라게 했다.

노라노 선생은 ‘해외진출에 대한 견해’를 묻는 신진에게 “73년도 코트라의 권유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샘플의상을 보낸 것이 인연이 돼 미국 뉴욕 백화점에 수출을 하게 됐지만 부족한 부분을 인식해 다시 준비했고 78년 말경 뉴욕에 쇼룸을 내면서 공격적으로 했다”고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전에 30년간 국내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탄탄한 기반을 구축했으며 충분한 마케팅조사로 노하우를 확고히 했음을 강조했다. 미국은 물론 아시아전역을 강타한 ‘노라노’가 카피로 따라 올 수 없도록 자가 프린트공장을 세우고 독특한 차별화를 실현했던 과정도 상세하게 설명했다.

‘돈에 대한 가치’에 대해서도 진솔한 답변을 했다. “돈을 쌓아놓고 사업하는 디자이너가 어디있겠는가? 매번 부족하고 쪼들려가면서 일하지만 진정한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라노 선생의 어머니는 “첫 번째 백만원 모으기가 힘들뿐 종자돈을 마련하면 그 다음엔 쉽다”며 국밥 한그릇을 마음 놓고 사먹지 못하게 했지만 파리 유학을 떠날 때 당시 서울시내 집 두채값이던 5천불을 선뜻 내주시고 독려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아직도 하루에 2~3개 패턴을 직접 제작하는 노라노 선생은 선천적인 부지런함과 열정으로 기른 제자들이 미국에 가서 모두 성공했음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이날 노라노 선생은 신진들에게 “열심히 일하는 것은 기본이다. 나는 무(無)에서 시작했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생각보다는 행동을 우선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하다 보면 반드시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가 기회의 손길을 내민다. 나는 그렇게 살아왔다. 기분좋게 일하라. 일이 닥쳤을때 생각하지 말고, 불평불만 없이 액션을 취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더불어 “내가 아프면 모든 것이 소용없다”며 “건강관리는 치열하게 해야 하며 자신에게 엄격하고 치밀하게 관리하는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노라노 선생은 한미FTA, 한류확산 등에 발맞춰 미국과 아시아 시장공략에 시동을 걸고 있다. 조카이자 후계자인 정금라 실장과 더불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원피스와 미니드레스를 디자인해 본격적인 글로벌 비즈니스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나이를 잊은 디자이너로서의 아름다움과 강인함, 열정에 신진들은 놀라워하며 “우리들이 나아가야 할 이정표를 제대로 찾은것 같다”며 “노라노 선생님을 만나고 나서 많은 반성을 하게 됐고 보다 철저하고 엄격한 관리를 통해 경쟁력있는 디자이너가 돼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각오를 다졌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