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Interview] [창간 33주년 기획 ‘살아 남아야 강하다’ 대담] 한국 섬유·패션 리더로부터 듣는다 - ① 박상태 성안그룹 회장

“한국 섬유산업 이대론 5년 못 버틴다. 제2의 활로 개성공단에서 찾자”

2015-06-16     취재부

남들 외형 확대할 때 뼈 깎는 구조조정 단행…중견 그룹사 일궈
이집트에 韓 섬유 전용 공단 조성 방안 마련 중

“근로자 노령화 심각…인력 없는 섬유산지, 제기능 못해”
“허상에 그친 다품종 소롯트 학습, 개발비 줄이니 노멀용 원사로 이전투구만”
“일본에 젖은 리카피 문화에 모두 갈팡질팡…악순환만 반복”

한국섬유신문이 오는 7월로 창간 33주년을 맞는다. 지난 81년 창간된 본지는 섬유·패션 전문 매체로서 유일하게 매주 2회(월·목) 발행하면서 신문 지령도 어언 3000호에 육박하고 있다.

본지의 지난 33년은 한국의 건전한 전문 매체의 모범과 상징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가로부터 대통령표창과 문화훈장을 잇따라 수상했으며 전문 언론 최고의 영예인 동암상을 받았다. 또 140여 전문 매체 회원사를 대표하는 한국전문신문협회 회장사를 3연임했다.

섬유·패션·의류업계서는 기업과 흥망성쇄를 같이 해 왔다. 이 분야의 부흥과 발전에 부응하는 정보 제공에 앞장서는 한편 어렵더라도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전문지로서의 공생·상조하는 겸허한 자세로 제작에 임했다.

본지는 창간 33주년을 맞아 힘든 환경이지만 섬유·패션 산업에 묵묵히 헌신하고 성장을 통해 모범을 보이며 섬유패션업계를 이끌어가는 리더를 지면에 섭외해 대담 시리즈 연재에 나선다.

한국 섬유산업은 새천년에 들어서자 마자 구조조정에 직면하는 등 10년간 혹독한 사활의 시간을 보냈다. 2010년 턴어라운드에 성공하면서 섬유산업은 부활의 기지개를 켜는가 했다. 그러나 이도 한순간 국내 섬유산업은 세계적인 재정위기와 수요 부진이 이어지면서 160억 달러 수출을 기점으로 재도약에 강한 저항을 맞았다.

당장 섬유업계는 과거 의류용 섬유에서 벗어나 IT를 기반으로 한 융복합 스마트 섬유, 산업용 섬유 등으로 구조 고도화와 고부가가치 창출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직면한 상황이다.
본지는 이번 연쇄 대담을 통해 우리가 처한 현재의 섬유산업과 미래 섬유산업을 재조명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향후 5년이 한국섬유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박상태 성안그룹 회장이 만나는 사람마다 들려주는 말이다. 무엇이 그를 이같이 조바심나게 했을까?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그가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 섬유업계 수장에 나서며 던진 출사표다.

1980년대는 섬유산업이 소위 ‘잘 나가던’ 시기였다. 신규 투자와 증설은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물건을 생산하면 내놓는 족족 임자를 찾아 잘도 팔려나갔다. 성안, 갑을, 동국무역, 한일합섬 등은 당시 주식회사 한국섬유산업을 이끌어가던 전성기 주역들이다. 그러나 외형확대를 지향하던 기업들은 90년대 들어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대부분 도태되고 말았다.

이중 성안그룹은 일찌감치 내실을 다지는 피나는 구조조정에 나선 케이스다. 성안합섬은 국내 후발 신생 합섬사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남아 반석위에 올랐다. 또 직물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성안 역시 인력을 줄이고 외형 성장을 자제하는 등 사운을 건 내실 경영에 주력했다.

성안은 지금 4개 섬유 계열사를 거느린 2013년 연결재무제표 기준 2600억원대 중견 그룹사 규모의 위상을 갖췄다. 그 중심에서 구조조정의 고삐를 죄고 지금의 성안그룹을 일궈낸 인물이 現 박상태 회장이다. 박 회장은 “IMF가 끝나자마자 곧 불경기가 닥쳐오고 경쟁력에 한계가 올 것을 대비해 회장(故 박용관 회장)님께 외형을 줄여야 하는 강력한 구조조정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그는 “(구조조정) 필요자금으로 150억원이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친께서 진노를 하시더라”고 회고했다.

제 살을 깎아내는 아픔을 딛고 한국섬유산업의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박상태 성안그룹 회장을 본지 김시중 회장 겸 발행인이 서울 역삼동 성안 본사에서 만났다.
/대담=김시중 회장 겸 발행인 / 글·정리=정기창 기자

-7월22일이면 한국섬유신문 창간 33주년이다. 성안도 깊은 역사를 가진 기업이다. 박 회장께서도 정통 섬유인이고. 그간 어려운 점이 많았겠다.

“입사가 77년이니까 37년 됐다. IMF가 끝나갈 무렵 구조조정에 나설 때 많이 힘들었다. 당시 동국, 갑을 등 쟁쟁한 기업들이 나가떨어질 때 불경기가 닥치고 경쟁력 한계가 온다고 보고 회장님께 ‘외형을 줄여야 된다’고 건의했다. 당시 ‘필요자금이 150억원이 들어가니 그 돈을 써야 겠습니다’고 말씀드렸더니 진노를 하시더라. 그래도 밀어부쳤다.

현재 성안합섬, 성안, 성안염직, 서진화섬 등 4개사가 있다. 구조조정 당시 재산가치가 주당 1만5000~2만원 가던 진안섬유, 한명 등 개인회사를 액면가 5000원의 성안에 합병했다. 회사를 튼튼히 만들 수 있었던 계기가 됐다.

경기 침체 중에도 재무구조를 양호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성안은 2000년대 초반 2억5000만 달러 수출을 정점으로 많이 줄었다. 이 부분은 마음 아프다. 선친께서 물려준 기업을 키워야 하는데. 성안합섬은 계속 투자하고 설비를 늘리는 등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설도 많이 개체하고…업의 흐름을 잘 따라왔다.”

-성안은 성공적인 구조조정으로 다시금 제궤도에 오른 경우다. 섬유로 돈을 번 다른 회사들도 재투자해서 위기를 극복할 노하우를 축적했어야 했다. 기술을 보강하고 어렵더라도 키워나가는 저력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쉽게 챙기고 버렸다. 섬유산업 위기가 가속화된 이유도 된다.
“일본의 리카피 문화에 젖어있던 한국이 갑자기 1등이 되면서 시장을 리드하지 못하고 도태된 측면도 있다고 본다. 일본 화학섬유가 무너지면서 개발에 손을 놓으니까 준비도 없이 급작스럽게 시장을 선도해야 하는 의무를 떠안게 됐다. 섬유 종주국 비슷한 위상은 갖췄는데 갈팡질팡하며 갈 길을 못찾았다.

학계와 기업, 언론 모든 업계에서 다품종 소롯트가 살길이다 해서 가봤는데 아무것도 성공한게 없었다. 원가가 너무 높으니까 앞에서 남고 뒤에서 손해보는 꼴이 됐다. 만만한게 연구개발이라 우선 이 돈부터 줄이고 보니 노멀 원사로 이전투구만 하게 됐다. 소재를 개발 못하니 악순환이 반복돼 한국 섬유산업이 힘을 못쓰게 됐다. 원사메이커에만 원망할 일도 아니다.”

-평소에 개성공단을 통한 국내 섬유산업 재도약을 자주 얘기한다고 들었다.
“지금 국내 섬유산업은 급속한 붕괴가 시작됐다. 제조업에서는 화섬과 직물만 남았고 면방과 봉제는 해외로 나갔다. 그나마 합섬이 남았는데 직물도 나가야되는 상황이 오지 않겠나 싶어 대안으로 개성공단 가자는 거다. 인도네시아 같은 곳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다. 말이 통한다는 것, 대단한 거다. 물류비도 적게 들고 명분도 서지 않나.

섬산련이나 한국섬유수출입조합 이사장을 하면서 그동안 정부에 건의한 건 단 하나였다. 외국인 근로자를 늘려달라. 그걸 해줘야 공장을 돌리지 않나. 대구 산지 가면 사람이 없다. 현장에서 일하는 생산직 여성들 나이가 55~60세다. 이분들 5년 더 하겠나. 이 시간이 지나면 일할 사람이 없다.

지금 준비해 나가더라도 길이 열리는 건 최소 3년 후다. 섬산련과 함께 개성공단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리포트를 만드는 중이다. 개성공단 백서를 만들어 정부에 건의하고 정치와 경제를 분리해 마음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인력에 대한 개런티(guarantee)도 받아야 되고. 아마 이런 작업이 최소 3년 걸릴 것이라고 보는 거다.”

-개성공단이 활성화되면 섬유산업에는 호재다. 그런데 거기는 원사, 직물은 전혀 없고 완제품만 있다.
“원사, 직물이 가면 봉제는 자동으로 딸려 들어와 일관공정을 만들수 있다. 서로 윈윈하는 거다. 이렇게 되려면 정부에서 땅이랑 건물 및 각종 인프라를 조성해 줘야 한다. 장치 산업 투자에는 많은 돈이 들어간다. 대신 우리는 이자를 내겠다. 우리가 북한 들어가서 땅 장사를 하겠나. 정부가 선투자 해주면 우리는 사용료를 내면 된다. 정당하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섬유 전용 공단이 조성되면 갈 기업인들이 많다고 본다.”

-인도네시아와 이집트 투자에도 관심을 갖고 여러 차례 방문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해외 생산기지와 개성공단 진출은 같은 맥락인가.
“아직 조사중이긴 하지만 개성공단이 1순위다. 해외라면 개인적으로 인도네시아보다 이집트가 유리하다고 본다. 이집트는 2번을 갔다 왔는데 여기에 한국 섬유 공단을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이곳은 무엇보다 전기료가 싸고 땅은 영구무상 임대가 가능하다. 투자 매리트가 상당한 것으로 본다.

이집트는 친미 성향에 중동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갖고 있더라. 주변 지인들께 의견을 구해 봤더니 모두 긍정적으로 대답해 줬다. 이집트 정부도 경제발전을 위해 외자기업이 들어오는데 적극적이다. 해외에 나가도 R&D는 국내로 갈거다. 세아상역이 그런 방식 아닌가. 본사에 연구개발 센터를 두고 생산은 해외에서 할 생각이다.

봉제를 제외하고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