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wer Interview] ■ 이규대 (주)고은텍스 대표 - 불황 극복 ‘품질경영’ 앞장…“투자 않으면 경쟁에 뒤진다”

2015-09-26     전상열 기자

30억 투자… 워터젯트룸 48대 갖춰
홀로서기 7년 만에 ‘자직의 꿈’ 실현
“아직 젊다. 내 브랜드 단 옷 만들 터”

철컥∼ 철컥∼ 철컥∼. 450평 규모의 공장안에서 48대에 이르는 워터젯트룸이 한꺼번에 토해내는 소리가 요란하다. 소리는 귓전을 때릴 정도였지만 큰 거부감은 느낄 수가 없었다. 직기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친근하게 느껴진 것은 왜일까? 극심한 불황으로 몸살을 앓는 섬유산지에 희망을 알리는 메신저, 바로 희망가였다.

지난 23일 기자가 찾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달성논공공단. 80여 업체가 입주한 공단에 섬유업체가 절반이 자리한 달성논공공단은 섬유산지 대구의 위상을 높이는 섬유공단 중 하나다. 이 날 섬유공단에 의미를 더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올 2월25일 공장 인수와 함께 약 7개월에 걸쳐 공장 셋팅을 끝낸 (주)고은텍스(대표 이규대·46)의 출범을 알리는 자리였다.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섬유산지에 이 날 고은텍스의 출범은 각별한 의미가 뒤따른다. 한마디로 ‘불황에 투자하라’는 실천사례로 충분하다. 이규대 사장은 “홀로서기 7년 만에 700평 규모 자체 공장을 갖게 돼 기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황에 결단을 내리는 운명을 타고 났다”며 숙명적인 사업운에 대한 감회를 털어 놓았다.

“산업 모두가 그렇지만 특히 섬유산업은 투자를 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섬유산업 환경이 어렵다보니 투자열기가 많이 식었지만 경쟁에서 이기려면 기계교체 투자는 필수라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주먹구구식 투자가 돼서는 안됩니다.”

이 사장은 올해 공장인수와 함께 약 15억 원에 이르는 설비투자에 나섰다. 설비투자는 쯔다코마 28대, 닛산 10대 등 일본산 워터젯트룸 38대와 중국 이통 워터젯트룸 ‘글로벌’ 10대 등이다. 이 중 도비 직기는 닛산과 ‘글로벌’이 각 10대씩 20대 규모다. 총 직기 가운데 도비기가 절반 수준에 이르는 것은 철저하게 품질위주로 투자해야 한다는 그의 차별화 생산과 맞물려 나간다. 폴리에스터 안감류 전문생산에서 앞으로 아웃쉘용 원단생산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주먹구구식 투자가 돼서는 안된다는 실천 사례로 꼽을 만하다.

또 그의 이번 설비투자를 들여다보면 남다른 선택에 관심을 모은다. 중국 이통산 도비 워터젯트룸 ‘글로벌’ 선택이 그것이다. 브랜드 파워가 높은 일산 직기 설치는 왈가왈부꺼리조차 안되지만 생소한 중국산 투자는 큰 관심사다.

“중국 이통산 도비 워터젯트룸 ‘글로벌’은 국내 도입대수가 40대에 불과하지만 품질경쟁력에서 봤을 때 손색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기계가격은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종전 일산의 1/3수준에서 절반 수준으로 줄었어요. 신설 공장 입장에서는 원가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가격경쟁력을 발휘합니다. 당초 8대 도입을 결정했는데 국내공급업체 (주)만주무역공사(대표 박영준)가 테스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성능향상에 큰 뒷받침을 했습니다. 이 정도면 경쟁력이 충분하다는 판단에서 추가로 2대 더 발주했습니다.”

그는 “최근 국내 원단 생산은 양에서 품질 싸움으로 전환됐다”며 생산성은 최대 RPM 측면에서 보면 일본산에 뒤지지만 650∼700 RPM 수준이면 생산경쟁력은 충분하다는 판단이다. 특히 이통 ‘글로벌’은 다른 중국산 하신이나 골마크 제품에 비해 발 빠른 A/S에다 부품 고급화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등 앞으로 섬유산지의 새로운 주력 기종으로 부상할 날도 머지않았음을 알렸다.

이 사장은 올해로 제직의 길에 들어선지 26년 차를 맞았다. 1988년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실습생으로 제직과 연을 맺은 뒤 산지의 봉명 명신 성신 등 주요 제직업체를 거쳤다. 섬유를 배워나가는 시간이었다. 그는 김해 출신이지만 이제 섬유산지 대구를 제 2의 고향으로 여긴다. 그리고 2007년 홀로서기에 나섰다.

고은텍스의 출발이었다. 워터젯트룸 54대를 임대해 원단판매에 승부를 걸었다. 그가 독립에 나섰던 2007년은 산지 직물업계가 큰 불황에 구조조정의 몸살을 앓는 시련기였다. 사채를 쓰면서까지 공장을 돌렸다. 홀로서기는 혹독한 시련을 안겼지만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동시에 키워줬다.

그는 이때 안감을 전문 판매하는 대한패브릭과 운명의 연을 맺는다. 주 거래선과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2년 뒤 2009년 그는 처음으로 자체 직기 설치에 나섰다. 규모는 10대에 불과했지만 자체 직기 가진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 가진 것 같은 희열이 솟구쳤다. 자직의 꿈은 더욱 용틀임 쳤다. 새로운 주거래처 탄생으로 이어졌다. 수출업체 글로벡스다. 내수와 수출에 명실상부한 주거래선 쌍두체제가 형성됐다.

“자직체제는 1차 과제였던 안정화 정착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계가 일하는 것 아닙니까? 좋은 기계를 놓는 이유가 됩니다. 자직의 의미는 사람은 줄이면서 효과는 높이는 데 있어요.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신호탄을 쏜 것이죠.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금 고은텍스는 4교대 체제다. 인력 1명이 직기 48대를 관리한다. 거의 무인 자동화 공장에 가깝다. 이 사장은 지난해 매출 100억 원을 돌파했다. 올해는 지난해 실적에 못미치는 80억 원 선을 예상했다. 원사가격 하락에다 원단가격마저 떨어지면서 매출감소로 이어진 탓이다. 이윤 확보마저 여의치 못하다 했다. 자체 공장 마련으로 제 2의 출발을 알렸지만 그를 둘러싼 주위환경은 2007년 홀로서기에 나섰던 상황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중국과 인도와의 가격싸움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봅니다. 똑같은 품목으로 경쟁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 아닙니까? 그들이 안하는 것, 못하는 것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다양한 제직의 묘 발휘라 할 수 있어요. 도비 설비를 갖추는 것이나, 경사에 변화를 주는 것은 이의 일환입니다. 또 선염사 사용을 확대하거나 사종을 달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어요.”

이 사장은 그러나 “원단에 장난을 치면 안된다”는 뼈있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정도를 지켜야 산다는 논리다. 경기는 호·불황의 싸이클을 타지만 생산과 품질에서는 상생과 신뢰의 도를 지켜야 바이어가 찾는다고 했다. ‘스토리가 없는 생산은 설 땅이 없다’는 논리였다. 그는 이를 위해 자직 확대보다 협력생산에 더 큰 공을 기울인다. 주문 물량 50%는 자직으로 해결하고 나머지 50%는 협력업체들에 생산을 맡기는 전략이다. 함께 살자는 상생의식은 늘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가 임대생산에 손을 뗀 이유다.

“옷이 팔리지 않으니 원단판매도 여의치가 않아요. 세월호 참사 후유증이 직격탄이 된 것이죠. 브랜드마다 재고가 넘쳐나지만…. 개발은 많이 하는데 원단선택은 디자인이 좌우합니다. 그래서 아쉬운 생각이 많아요. 앞으로 내 브랜드를 갖는데 역량을 쌓아나갈 생각입이다.”

이 사장의 최종 목표는 버티칼 시스템의 완성이라 말했다. 자신이 생산한 원단으로 내 브랜드를 단 옷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아직 젊다고 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하기보다 스스로 개척해 나가자는 진취적인 주문도 잊지 않았다. 한 솥밥 논리도 폈다. 직원들이 잘 따라줘야 한다는 뜻이다. 공생이라는 큰 틀에서 움직여야 꿈도 이뤄진다는 생각이다. 그가 늘 초심의 자세를 다잡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