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경제 버팀목 동대문시장 ‘최악의 불황’

봉제공장까지 연달아 직격탄, 매출 1/10 토막 홈쇼핑·인터넷몰·중국바이어 이탈 현상 심화 자금 압박 못이긴 상인 2명 스스로 목숨 끊어

2015-10-31     정기창 기자

여름휴가가 끝나고 본격적인 가을장사를 준비하는 지난 9월, 동대문의 대형 의류 쇼핑몰 입점업체 2곳의 매장 상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들은 각각 동대문 말로 ‘직기(우븐)’와 ‘다이마루(니트)’를 전문으로 취급하던 점포주이다.

주변 상인들에 의하면 9월은 현금을 확보해 가을장사를 준비하는 시기인데 자금 결제 압박을 받던 상인 2명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 동대문 시장 상인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 얘기를 하며 “결국 올 것이 왔다.

올해는 동대문 시장 역사상 최악의 불경기”라고 한탄했다. 이들은 “농가에서 이런일이 생기면 정부에서 대책을 세운다며 떠들썩하겠지만 우리는 그나마 돌아봐주는 사람도 없다”며 소외감을 토로하고 있다.

동대문 시장 민심이 흉흉하다. 서민 경제의 척도이자 국내 봉제산업을 떠받치는 동대문 시장 경기가 사상 유례없는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장 상인들에 따르면 작년부터 불어닥친 경기침체의 여파로 대부분 점포는 매출이 절반 이상 줄고 자고나면 문을 닫는 매장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부족한 재정을 매꾸기 위한 정부 당국의 무자비한 세무조사까지 겹쳐 불황에 시달리는 시장 상인들의 입지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동대문 D쇼핑몰에서 여성복 도매업을 하고 있는 모 상인은 “예년에는 세무조사를 받았다는 곳이 2~3곳에 불과했는데 작년에는 내 주변에서만 무려 10개 넘는 곳이 세무조사를 받아 상인들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고나면 문닫고 무너지는 상인들이 속출하고 있다. (장사도 안되는데) 세무조사 받느니 아예 파산해 버리겠다는 상인들도 꽤 있다”며 “우리도 매출이 안 나와 직원 숫자를 줄였다”고 덧붙였다. 그는 앞으로 장사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털어놨다.

시장에 불어닥친 불경기는 곧바로 영세한 봉제공장 몰락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더 큰 문제를 낳고 있다. 창신동에서 여성복을 생산해 동대문 도매 시장에 공급하고 있는 S봉제공장 사장은 “월급을 주고 생산하는 일정규모 이상의 공장은 대부분 일감이 없어 폐업까지 생각하는 곳들이 많다”며 “그나마 부부가 일하는 소규모 공장만 (돈을) 안쓰고 버티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동대문 시장 불경기는 잠깐 왔다가는 경기 사이클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홈쇼핑 업계에서 코트, 패딩 점퍼 등 계절상품을 싼값에 훑고 지나가면 피부로 와닿을 만큼 매출이 줄어든다. 여기에 규모가 커진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이 대량 오더를 중국에서 생산함에 따라 봉제공장에 일감을 주던 큰 손들이 죄다 빠져나가 공동화 현상이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최근 시장을 떠받치던 중국 바이어 이탈도 심화되고 있다. 동대문 시장을 대상으로 한 디자인 전문업체인 C사 사장은 “전에 우리 디자인으로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사가던 바이어들이 이제는 디자인만 구매하고 생산은 중국에서 한다”며 “의류 시장을 중국에 빼앗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봉제산업협회 차경남 회장은 “핏과 패턴, 원단 소재는 중국 바이어들도 인정하지만 저가 공임에만 몰두하다 보니 제품의 질이 많이 내려갔다”며 “중국 바이어들에게 이제 ‘메이드 인 코리아’라는 메리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 매출이 줄면서 봉제 공장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장 매출이 1/10로 줄어들면 우리는 1/20로 줄어드는 영향이 있다”며 “청바지 같은 품목은 이미 생산 기반이 죄다 무너져 앞으로 중국 생산에 대한 종속 현상이 더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