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특집] ‘섬유류 순환재활용 사업’도 비켜가지 못한 ‘최악의 불황’
원자재가 하락으로 재활용 비율 낮아져…서울시 사업의지 약화
지자체 단속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무허가 업자 불법 기승
#1 남양주시 진접읍 진벌리 OOO-O번지 일대 T社(개인사업자)의 한 불법 쓰레기 야적장에는 자투리 원단을 비롯, 섬유류 폐기물이 잔뜩 쌓여 있다. 현장을 함께 지켜본 업계 관계자들 추정에 따르면 약 2~3000t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여기에는 서울과 경기도 일대의 봉제 및 원단 공장에서 나온 자투리 원단이 야적장 곳곳에 산더미를 이뤘고 수거 차량이 간간히 드나들었다. 공장 바닥은 흙으로 돼 있어 비가 오면 침출수가 흘러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허가를 위해서는 비를 막을 수 있는 지붕을 설치해야 하고 바닥은 콘크리트를 깔아 침출수가 흐르지 않게 설비를 갖춰야 한다.
그러나 이 땅의 지목은 전(田)으로 돼 있는 농지보전지역이다. 야적장에서 직선거리로 채 50m도 되지 않는 곳에는 아파트와 학교가 있어 설령 설비 요건을 갖춘다 하더라도 허가가 날 수 없는 지역이다. 업계에 따르면 이 업체는 1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잡고 종량제 쓰레기 봉투나 합법적인 재활용 마대의 절반도 안되는 값에 자투리 원단을 불법 수거해 방치하고 있다.
#2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일대의 또다른 불법 폐기물 업체인 D社(법인)의 공장 마당에는 무려 6~7000t에 이르는 폐섬유들이 쌓여 있다.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의 헌 옷 의류 수거함에서 나온, 재활용이 불가능한 의류 및 신발 등이다. D사는 통상 kg당 120원하는 수거비의 절반값을 받고 이런 폐섬유류를 받아 불법 적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정도의 폐섬유류를 적법 처리하려면 약 7~8억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공장 부지를 임대한 사업주는 이전에도 이런식으로 싸게 폐원자재를 수거하고 불법 방치한 후 그대로 도주해 수억원의 이득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의 전언이다.
■ 폐섬유류 방치후 도주하는 무허가 업자 늘어, 왜?
최근 세계적인 불경기의 여파로 섬유류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폐섬유를 불법으로 처리하는 무허가 업자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특히 이들은 임대한 공장에서 1~2년간 영업한 뒤 부지가 폐섬유 쓰레기로 가득차면 그대로 도주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있는 상황”이라며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전에도 무허가 불법 수거업자들은 많았지만 지금처럼 폐섬유를 수거해 방치한 후 도주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상황이 왜 이렇게 바뀐 것일까? 업계에 따르면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섬유류 원자재 가격의 하락이다.
2014년 10월 기준, 주요 화섬 및 원면 가격은 전년 대비 20% 이상 떨어졌다. 국제 유가 하락에 따라 화섬 원료인 카프로락탐은 전년 동월 대비 11.5% 하락했고 에틸렌글리콜은 20.8%가 떨어졌다. 국제 원면 가격도 전년 동월 대비 21% 하락한 0.79달러를 기록했다. 이 여파로 국내 화섬 및 면방 업계는 일제히 생산을 줄였고 출하량도 감소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곧 재활용 섬유류 수요의 감소를 뜻한다. 2012년 1200원(kg당)하던 재활용 면원단의 경우 2013년 600원으로 떨어지더니 작년에는 급기야 200원으로 3년 사이 무려 83%나 하락했다. 화섬도 같은 길을 걸었다. 2012년 550원이던 재활용 화섬 원단은 작년 100원으로 81%가 떨어졌다. 가격 하락폭이 원료가에 비해 몇 배나 높은 셈이다.
본지 및 경기섬유산업연합회, 서울봉제산업협회와 자투리 원단 순환재활용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리텍스는 시장이 호황이던 2012년 당시 매월 약 100t의 재활용 면원단을 중국으로 수출했으나 작년 하반기 들면서 아예 수출길이 막혔다. 원자재 가격 하락에 따라 재활용 원단의 수요량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수출뿐만이 아니다. 이전에는 국내로 월평균 약 200t씩 나가던 재활용 화섬 원단도 지금은 출고가 중지된 상태다.
설상가상으로 경제 전반에 불어닥친 불황은 자투리 원단 같은 폐섬유류를 주요 열원으로 사용하는 염색 등 업체들의 소각로 가동률을 크게 떨어뜨렸다. 예를 들어 일 50t 용량의 소각로를 가진 업체가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자 하루 소각량을 20t으로 낮춘 것이다. 소각량이 줄어든만큼 열원용 폐섬유에 대한 수요가 떨어지면서 수거된 폐섬유류들이 갈 곳을 잃어 버리게 됐다. 상황이 이렇자 수거 업체들은 이를 불법 적재하고 도주하는 양상을 띄게 됐다는 설명이다.
■ 남양주시 200여 무허가 중 1년간 단 1곳 행정처분
남양주시는 올해 이 같은 무허가 폐기물처리업체 8곳에 대해 총 15회의 지도 점검을 시행했다. 그 결과 1건을 고발 조치하고 이 업체는 경찰에 넘겨져 과징금 부과 처분이 내려졌다. 통상 무허가 업체의 불법 사항이 적발되면 1개월의 영업정지 또는 최소 20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업계에 따르면 남양주에는 약 200여개 이상의 무허가 업자들이 폐섬유를 수거해 불법 매립·소각을 하고 있다. 이 많은 업체들 중 1년간 현장 단속을 당한 곳이 8개이며 그 중 법의 심판을 받은 곳은 1개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행정처분을 받은 후 무허가 업자들이 또다시 불법을 저질러도 이를 막을 뚜렷한 수단은 없다. 재활용 허가 신고 및 관리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남양주시 관계자는 “지속적인 지도 단속으로 행정처분을 하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양주시는 위에 언급된 T사에 대해 “입지 때문에 허가가 나지 않은 곳”이라며 “허가 자체가 안되는 지역이므로 계속해서 고발처리하겠다”고 밝혔다.
■ 중간집하장 반입 중지…재활용 참여율 낮아져
서울시는 2013년 2월 자투리 원단 자원순환재활용 시범사업을 출범하면서 서울봉제산업협회, 리텍스와 업무협약을 맺었다. 그냥 버려지던 봉제공장의 자투리 원단을 수거해 재활용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면서 시는 성동구 용답동 중랑물재생센터 부지내 약 3305㎡(1000평)에 서울시 전역에서 수거된 폐섬유류를 한데 모으는 중간집하장을 제공했다.
이는 봉제 공장들이 7~8000원(200리터 기준)에 이르는 재활용 마대를 2~4000원에 구매해 쓸 수 있는 비용 절감의 계기가 됐다. 재활용 수거·운반 업체가 자투리 원단 수거에 들어가는 물류비용이 줄어드는 만큼의 혜택을 봉제공장에 준 것이다. 이로 인해 재활용 사업에 참여한 서울시내 봉제공장들은 최소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에 이르는 비용 절감의 이점을 누렸다.
그러나 서울시는 불과 2년도 안된 작년 10월 대체부지를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투리 원단 반입을 중지시켰다. 같은 자리에 들어서는 서울재사용플라자 건립이 이유다. 한때 자투리원단 순환재활용 사업에 참여한 기업은 줄잡아 500여개가 넘었으나 중간집하장 반입중단을 기점으로 작년 말 현재 200여개 기업으로 절반 이상이 줄었다.
물류비 상승으로 인한 수거 비용이 크게 증가하자 재활용 마대 값도 함께 올랐기 때문이다. 섬유종합재활용 업체인 리텍스는 그동안 1t 트럭으로 서울시 각 구에서 수거한 자투리 원단을 중간집하장에 모은 뒤 5t 트럭으로 한꺼번에 남양주 공장으로 보내왔다. 그러나 중간집하장이 없어짐으로써 1t 차량이 매일 서울과 남양주를 오가면서 인건비와 시간, 기름값 등 물류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 봉제공장 “서울시 결정 이해하기 어렵다”
사업에 참여했던 봉제공장 사업주들은 이 같은 서울시 입장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종로구 숭인동에서 여성복을 생산하는 세성어패럴 신현섭 사장은 “200리터 재활용 마대(3000원) 한 개면 100리터 종량제 쓰레기 봉투(1850원) 10개 분량이 들어간다”며 “서울시가 중간집하장을 없앤 이후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공장은 일주일에 4개 정도의 마대자루가 나오기 때문에 일주일에 1만2000원이던 쓰레기 처리 비용이 7만4000원으로 6배 이상 늘었다. 1년으로 따지면 74만4000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 셈이다. 그는 “환경 보호를 생각하면 종량제 쓰레기 봉투보다 비싸더라도 이전처럼 재활용 마대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시 순환재활용사업 협력 단체인 서울봉제산업협회 차경남 회장은 “중랑물재생센터 일대가 곧 재개발 돼 중간집하장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아무 대책 없이 반입을 중단시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서울시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업은 환경보호와 자원 재활용을 목적으로 시작됐지만 영세 봉제업자들을 살리기 위한 사업이기도 하다. 봉제공장들 반발이 심하다”고 말했다.
■ 뚜렷한 대책 없이 원점으로 회귀
서울시는 계속해서 자원순환재활용 사업을 확대한다는 방침이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태다. 주무 부서인 서울시 자원순환과 관계자는 “최소 1653㎡(500평) 이상의 유휴지여야 하는데 (작년) 9월부터 대체 부지를 찾았으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중간집하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