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반도주 하지맙시다
2000-08-23 한국섬유신문
‘야반도주’라는 말이 있다.
세상물정모르는 10대나 20대쯤엔 이룰수 없는 사랑을
극복하기 위해 두사람이 달빛에 밤길을 달리는 생각을
떠 올릴 것이다. 아주 로맨틱하지 않을수 없다.
‘야반도주’란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남들이 잠든 밤
에 도망가는것이란 단순한 뜻풀이와 함께 서글프고도
최악의 상황이란 감을 잡게 한다. 그러나 우리들 가운
데 적지않게 직접, 간접적으로 ‘야반도주’를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 ‘오일 쇼크’가 있었을 때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았다. 그때 우리주변엔 사업을 하거나 영세상인이었
던 많은 아버지들이 부도를 내고 야반도주란 것을 했었
다.
그때당시 학교에는 낯선도시에서 전학을 오는 아이들이
드문드문 있었다.
좀 친숙해 지면 하는 얘기가 거의 아버지의 부도로 친
인척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오게됐다는 것이었는데 그
것도 ‘밤‘에 말이다.
지난해 IMF속에서 우리는 또다른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아 많은 기업들이 쓰러졌다. 그러나 당당히 인정하고
이를 뼈아프게 반성한 기업들은 부도를 극복하고 오히
려 내실성장구도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업을 운영하지 않는 우리같은 사람들이 어찌 그 아픔
을 이해할수 있겠는가 만은 최근 몇몇 중소패션전문업
체들의 좌초가 속을 쓰리게 한다.
모업체는 은행에서 마감을 하루 연장해주겠다는 다짐을
받아내고 전직원이 밤을 세워 재고처분과 창고정리작업
을 했다.
직원들은 사장이 부도를 막을것으로 믿고 있었으나 그
는 모든 것을 챙겨 야반도주했다.
직원들의 월급은 몇 달이 밀려있었던 상태였는데 사전
에 계획된 듯 가족과 이사를 가버렸다는 것이다.
밀린월급은 그들과 그들가족의 생계에 직면해 있는데...
그러나 직원들은 부도보다도 사장에게 인간적인 배신을
당한데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사장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
고 힘들었던가는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믿고 같이 했던 직원들에게 몇푼 돈
때문에 지울수 없는 상실감을 준 것은 두고두고 자신에
게도 치욕이 아닐수 없을 것이다.
실패를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당당히 맞서 차라리 도
움을 구하는 것은 어떨지. 기업인으로서 치명타를 입었
겠지만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는 인간적 윤리와
도의적 책임이 중요하지 않을런지...
얼마전 일본의 모 기업이 파산을 인정하고 최고경영자
와 간부들이 눈물로 사죄하면서 자신과 함께 해 온 직
원들의 취업을 호소하던 모습이 자꾸 떠 오른다.
/이 영희 기자 yhlee@ayzau.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