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어드바이스】엉터리가 통하는 업계
2000-08-16 한국섬유신문
엉터리가 통하는 업계
숫자가 만들어내는 궤변
한 신입사원이 회사 분위기상 「휴가를 보류하라」고
하는 부장에게 다음과 같은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4천만 인구중에 노인과 어린아이 그리고 전
업주부들을 빼면 실지로 경제활동 인구는 2천만명이라
고 합니다. 이중에서 400만명은 군대에 가있고, 150만명
은 공무원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정계에 발을 들여놓고
있는 분들 258만명, 사장님들 500만명은 노동인구로 분
류할 수 없으니까 제외하고, 또 이 와중에서 병원신세
를 지고 있는 200만명, 대학생 490만명, 그리고 명퇴와
황퇴로 본의아닌 실업을 겪고 있는 사람 100만명을 빼
고 나면 결국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경제인구는 단 두명
만이 남습니다. 그 두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부장님과
저...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휴가를 가지 못한다면, 이
것은 정말로 어불성설입니다. 」
청산유수와 같은 말솜씨에 숫자까지 줄줄이 이어지는
이런 논리에 부장님은 어떤 대답을 했을까.
순진한 부장이라면 잠시 넋을 잃은채,「정말로 그런 통
계가 있느냐」고 감격했을지도 모르고, 아예 처음부터
숫자에 현혹되지 않으려고 귀를 틀어막아버린 부장도
있을 것이다.
기선제압하는데 필수도구
사람들의 이런 숫자에 약한 성향을 파악한 화법 전문서
들은 앞다투어 「숫자의 카리스마를 이용하라」라는 테
마를 주요이슈로 다룰만큼 숫자의 힘은 강력하다.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이 숫자
적인 근거를 대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소숫점 이
하의 숫자까지 외워서 읊게 되면 웬만한 상대의 표정을
의심에서 존경심으로 바꾸는 것은 식은죽 먹기라는 것
이다.
그래서인지 「대충이라도 좋으니까 대략적인 수치만 제
시해 달라.」며 데이터만 갖고 있으면 안심이 된다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국내 의류시장의 규모가 그렇고 패션업계의 매출 통계
가 그렇고, 시시각각 변하는 소비자들의 취향분석등을
모조리 다 수치로서 끌어안고 보겠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 방대한 자료의 활용여부보다 그 숫자의 파워를 실감
하곤 하는 것이다.
치고 빠지는 장사치 근성과 통계.
그러나 가장 정확한 근거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는 숫자
의 맹점은 바로 오차와 궤변을 이론적 근거를 마련해
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데 있다.
더구나 그것이 해외에서 나온 자료라고 하면 더더욱 황
송해 하는 것이 우리네 실정인만큼, 외래어와 숫자에
집착한 MD를 전개하다보면 이상한데서 착오가 생기기
도 하는 것이다. 특히 이런 오류에 많이 노출되어 있는
업계가 패션업계이다.
소비자들이 과연 무엇을 좋아하는가. 어떤 컬러를 좋아
하는가. 디자인 취향은 어떻게 변화되는가 등등을 분석
한 자료들을 접하다 보면, 그야말로 개개인적 취향을
숫자로 뭉뚱그려서 이론화 시키는 작업들에 압도되어
스스로 지쳐버릴 때도 종종 있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히 말해서 패션업계의 마케팅 조사는 엉터
리가 많다.
어느 하늘에서 떨어진 숫자인지 그 근거를 따지는 사람
이라도 있다면, 「패션은 상품의 흐름이 빠르기 때문」
이라며 궁색하게 빠져나갈 수도 있겠지만, 조사자료를
신뢰할 수 없는 진짜 이유는 좀더 다른 곳에 있다고 생
각한다.
그것은 우리네 메이커나 소매점 모두가 오랫동안 해외
패션잡지등의 정보와 자료를 바탕으로 이른바 「치고
빠지는」 장사를 위주로 해왔기 때문에 내수시장의 흐
름을 제대로 예견하고 검증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기획부재의 현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준이 낮아서...」
마케팅전개에 실패한 디자이너가 이런 말을 한다.
해외에서 정통패션을 공부했고, 잦은 유럽출장등을 통
해 첨단 마케팅정보를 그렇게 많이 갖고 시장에 뛰어들
었는데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불만이 그
의 말의 요지이다.
졸지에 자신은 진주목걸이고 소비자들은 돼지들이라는
뜻을 미화시킨듯한 이런 표현은 프라이드 높은 디자이
너들에게서 가끔 들을 수 있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
는 이론이기도 하다.
또한, 가끔씩 「유행색이 맞지 않는다」, 「예상한 상품
이 팔리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소리도 여기저기서 듣
게 된다.
그러나 그것도 뜬금없는 자료를 믿고 뛰어다닌 그사람
의 운이고 팔자인만큼, 어물어물 넘어가 버리는 것이
현실이다.
실지로 가두 앙케이트 조사를 나서 보아도 우리나라 사
람들의 대부분은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이 전혀 다르다고 대답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가 얼마나 MD적인 차원에서 기획에
연연해 하며 마케팅적인 차원에서의 기획을 무시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나타내 주는 예이기도 하다.
정확치 않으면 없는게 낫다
그런의미에서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정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