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르는 ‘거위의 꿈] 쏘잉바운더리스 하동호 - “남녀노소 함께 입는 브랜드로” 당찬 포부

2016-04-27     이원형 기자
정글같은 패션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꿈을 만드는 신진 디자이너들, 음지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쫓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는 기성 디자이너들도 모두 인고의 시간을 거쳐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본지는 이번 연재를 통해 ‘나만의 옷을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신예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힘들지만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본업에 매진하는 이들이 있기에 한국 섬유패션산업 미래는 밝다.

10년 전 트렁크 하나 들고 상경한 청년이 서울패션위크 무대에 올라 뜨거운 박수를 받을 때까지, 그는 디자인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 한 번 한적 없었고 폼나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감이 좋았다. 옷 만드는게 즐거웠다. 바느질 하나로 세상의 경계를 잇겠다는 쏘잉바운더리스(Sewing Boundaries) 하동호 디자이너다.

대구 태생 하 대표는 섬유업에 종사하는 가족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재단판 위에서 뛰어놀았다. 티셔츠 제작 과정과 봉제 작업을 눈으로 먼저 익혔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를 상징하는 빨간 티를 제작해서 판매한 것을 시작으로 동대문에 입성했어요. 밑바닥부터 배워보자는 일념 하나로 일하다가 길옴므 서은길 선생님 밑에 들어갔죠. 그 때부터 본격적인 디자이너의 꿈을 꾸기 시작했어요. 무대 뒤가 아닌 앞에 서고 싶었습니다.”

오기와 깡 하나가 자신의 무기였다는 그는 2005년 길옴므에서 첫 쇼를 진행했다. 뜨거운 희열감을 맛본 후 ‘멋있는 옷을 만들자’는 마음이 강해졌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보다 더 떨리고 기분 좋았던 적이 없다.

“그 땐 모든게 다 신기했어요. 당시 동대문 출신 최범석 디자이너가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걸 보고 많은 힘을 얻었죠. 배우지 않아도 분명 길은 있다는 걸 알았어요.”

하 대표는 고집스럽다. 하루가 멀다하고 생겨나고 있는 세컨드 레이블을 만들고 싶지 않다는 당찬 디자이너다. 싼 옷은 싸게 비싼 옷은 비싸게 판다는게 그의 확고한 이론이기 때문. 어떤 제품이든지 고객에게 자신있게 선보일 수 있기에 나올 수 있는 생각이었다.

“매 시즌 정말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해요. 제일 생각이 많았던 첫번째 시즌에는 달랑 한 제품 팔렸어요. 하지만 꾸준한 마니아 층 덕분에 힘을 얻었죠. 판매보단 저의 감성을 보여주는게 먼저에요.”

그는 현재 회사운영과 마케팅, 다음 컬렉션 준비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자양동에 있는 자체 프로모션 공장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 이 곳에선 커플티와 유니폼 류의 캐주얼군 제품을 주로 생산한다. 네오플랜 등 다양한 소재를 직접 만드는 건 기본이다. 향후 남녀노소가 모두 입을 수 있는 브랜드로 도약하고자 하는 그의 신념이 이러한 다채로운 경험을 통해 준비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디자이너의 힘은 내셔널 브랜드 제품에는 없는 ‘옷’의 이야기를 고객이 공감하고 이해해주는 것에서 나옵니다. 저는 그 힘을 자부심이라고 생각하고 일상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존재를 비틀어서 선보일 거에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각오가 됐습니다.”

하 대표의 다음 시즌 컨셉은 ‘보이스카웃을 꿈꾸는 아람단’. 독특한 이야기를 작품 속에 어떻게 담아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건 하동호 만이 할 수 있는 저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