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사람. 삶] 원 대 연 SADI학장

2006-07-25     한국섬유신문
한국 패션 경영의 ‘마이더스 손’ “이젠 최고의 패션 명문학교 만들 터”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빠른 결단과 변신을 수없이 요구하는 패션사업을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하던 시절. 마치 마이더스의 손처럼 부실을 황금의 틀로 바꾸어 놓았던 원대연 학장. ‘정확치 않으면 없는 것이 낫다’는 철두철미함과 옳다고 믿으면 한결같이 밀고 나가는 뚝심이 그의 무기였다. 그의 길은 화려한 이력을 지닌 여타 최고 경영인들과 걷는 길도 분명히 달랐다. 하늘이 '노란색인지 빨간색인지' 올려다 볼 시간도 없이 동분서주하여 도산직전에 몰린 프랑크푸르트 지점을 살려 낸 것이 그랬고, 80년대 중반 줄곧 적자를 내던 에스에스 패션을 100억이 넘는 흑자기업으로 변신시킨 그의 이력이 이를 역력히 말해준다. 결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던 도전하는 완벽주의자. 몇 번이고 진급에서 밀려나기도 했다. 씁쓸한 기억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고 해결해야 하는 난제가 있을 때 그는 늘 묵묵히 구세주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흐르는 물이나 공기와 같은 패션이 성공적 비즈니스 모델로 속속 탈바꿈되어 나타나면서 사람들은 환호했으며 마침내 그는 국내 최고 패션브랜드의 대표자리까지 올랐다. 그런 그가 지금 국내 최고의 패션 디자인 명문교를 만들어 내야 하는 시대적 요구 앞에 다시 서 있다. 삼성의 21세기 인재교육 프로그램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쉬운일은 없었다. 다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든 성공시켜야 한다" 라고 말하는 타고난 경영자. 위기앞에서 더욱 지혜로워지고 진가를 발하는 그의 신념을 들어본다. ―섬유업계의 수출현장으로부터 시작해 한국최대의 패션브랜드 대표자리에까지의 오른 섬유패션의 전문 경영인이라는 이력은 삼성그룹의 기업문화적으로 보았을때 상당히 이례적인 일일 듯 합니다. ▲그렇죠. 삼성의 임원은 스페셜리스트라기 보다 제너럴리스트에 가깝죠. 저의 경우는 좀 특별한 경우였던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중앙일보 사회부 기자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 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안정적인 제일모직보다는 새로운 기회가 많을 것 같은 제일복장을 선택했죠. 시작이 그래서 그랬는지 제가 가는 곳은 늘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 문제가 쌓여 있는 곳이였습니다. 아마 눈앞에 던져지는 골치아픈 문제들의 해결사로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것때문이 아닐까요.(웃음).
―그만큼 능력이 뛰어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전문경영인으로서 보시는 패션이란 어떤 것입니까. ▲글쎄요. 85년 당시, 토요일 근무 후 유명 백화점을 꼭 돌아보곤 했는데, 덕다운 제품이 한참 인기를 모을때였어요. 갈때마다 사람들이 우리 매장에 와글와글 모여 있는 것을 보면서 어찌나 기분이 좋고 기운이 나는지... '진짜 수확의 기쁨이 이런거구나' 하고 보람을 느낀적이 많았죠. 그런의미에서 패션은 작황이 좀 잘됐다고 안주하면, 금방 나빠지고, 애를 쓰고 공을 들인 만큼 두배 세배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농사와 같은 것 아닐까 합니다. 이를테면 요령이 필요 없는 아주 정직한 비즈니스 바로 그것이죠. ―'컨벤션'이라는 개념을 패션계에 처음 도입하신 것으로도 유명하신데. ▲우리나라에는 진정한 바이어가 없기 때문에 견제할 수 있는 제동장치라는 것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모든 것이 생산자 위주의 발상으로 돌아가다 보면, 어떤 상품이 잘 팔리는지를 모르게 되고, 상호정보에 대한 피이드백이 잘 안되게 되어 결국은 자멸하는겁니다. 판매측과의 대화가 없기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막기 위해서도 그렇지만, 현장을 모르는 옷은 생명력도 없다는 생각과, 소비자들의 생각과 입장을 존중하겠다는 뜻이 있었죠. 이것은 디자이너들을 엄청 괴롭힌 일이긴 하지만, 모든 시즌에 브랜드별로 상품을 만들어 대리점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 당시로는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죠. ―제일 모직에 있을당시, 연구실에서 만든 원단으로 옷을 만들기를 거절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는데. ▲아닌건 절대 아닌것이기 때문이죠. 아무리 자체 연구소의 개발품이라고는 하지만, 마켓을 모르는 연구원들이 만든 제품은 쓸수도 없었고, 그때문에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사용하지 않겠다고 목청을 좀 높였었죠. ―스스로에게나 일에서나 냉철한 이성과 잣대를 갖고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SADI 역시 삼성이라는 말을 많이 들을정도로, '들어오기도 쉽지 않고, 나가기도 쉽지 않다'고 할만큼 소수정예의 엘리트 교육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인재가 곧 기업인 시대입니다. 믿을 것은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ADI는 학생들과 교수 모두에게